취나드A,B
(나는 이길을 중옥취나드A,B로 부르고 싶다)

개척자: 이본취나드, 선우중옥
조력자: 민용기, 이강호, 홍순국

선우중옥

북한산 인수봉에서 사진 선우중옥
왼쪽부터 민용기, 이강호, 이본취나드, 홍순국


이본취나드

1938년 11월 9일생 (68세)

고교증퇴 암벽등반에 올인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 입국

1963~1964년 주한미군 시절 인수봉 여러코스 초등
그후 후배들이 그중 두코스를 취나드 A,B로 불리게 되었다

불랙다야몬드 모체인미국 최초의 산악전문 장비업체 취나드 설립

3450미터 비츠로이 남벽을 60일만에 초등 성공
그후 파타고니아 설립

1989년 취나드사 파산신고
직원들이 인수 불랙다야온드 설립

1997년 텐트 제조사 비불러 인수

2013년 의류 생산

2015년1월14일 클라이머 토미 콜드월, 케미 조지슨과 
미국 요세미테 최고난이도 던월(새벽직벽)을 자유등반으로 19일 만에 완등

마음이 풍요로운 억만장자
이본 취나드는 부탄 히말라야의 6,000m급 산을 초등한 암벽천제

취나드는 본인이 개척한곳 루트 정보를 남기지 않았다
루투 이름도 붇이지 않은것이다 왜?
“다음에 오는 사람도 초등자의 기쁨을 만끽하도록.”

개척동기

1963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이본 취나드는 어느 날 인수봉과 만나게 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꾼인 선우중옥 씨를 찾아간다. 
영어를 잘 못했던 선우중옥 씨는 이 미군인이 하는 말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암벽등반을 같이 하자는 의사를 그럭저럭 알게 되어 
그를 데리고 인수봉으로 갔다.

선우중옥 씨는 취나드가 암벽의 초보자인줄 알고 인수봉 밑에서 자일 묶는 법부터 가르쳤고 취나드는 묵묵히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취나드가 누구인가? 이미 15세 때부터 학교를 중퇴하고 암벽등반에 매진하던 미국의 정상급 클라이머였다. 
함께 등반을 하면서 서로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바위꾼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강오 씨 등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바윗길을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인수봉 귀바위 크랙코스'라고 불리던 취나드A와 취나드B길. 1963년 9월의 일이었다.

이본 취나드는 의리 또한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1964년 주한미군에서 제대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1971년 선우중옥 씨를 초대한다. 
함께 일을 시작한 선우중옥 씨는 나중에 취나드 이큅먼트사의 공장장까지 역임을 하고 
부인 선우영옥도 이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발탁 함께 근무하게했다


크라이머 취나드 인생

이본 취나드는 프랑스계 캐나다인의 아들로 태어난 미국 이민자이다.
초등학교에 진학하지 전까지 프랑스어를 더듬거렸을 뿐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고 한다.
덕분에 미국의 초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그는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한 외톨이가 되어었고
고교시절 시절에도 학업에 흠미츨 부치지 못하고 매사냥을 즐겨 하던중
돈 프렌티스를 만나게 되고 그는 크라이머였고 그에게서 매 둥지까지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이본 취나드는 훗날 "노스페이스의 설립자가 되는 더그 톰킨스"
돈 프렌티스를 만나면서 암벽등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좋아하는 암벽을 타기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암벽에 올인하게 된다

스무살을 넘기면서 요세미트 등반을 하기위해 직접 장비인 피톤을 제작하기 시작 했다.
그가 만든 피톤이 친구들에게 알려지면서 만들어 달라는 친구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후 피톤은 크라이머 들에게 알려지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효자 상품이던 피톤을 암벽보호를 위해 생산 중지했고, 
그 대용으로 만든 것이 너트와 스토퍼들이다.
이것들을 기반으로 지금은 백만장자 거부이다
이본취나드는 “가장 크게 성공한 고교 중퇴자”

중옥취나드B 개념도

중옥취나드B 루투사진

1피치

2피치

3피치

4피치

4피치 상부에서

5피치

5피치 상부에서

등반 사진 감상하세요~~

1피치

2피치

3피치

4피치

5피치

5피치 상부 귀바위 테라스

의대길로 하강

등반 종료후 등반루트를 그려본다

취나드A(중옥취나드A) 
가보지 못해 발취해 소개해본다

중옥취나드A 개념도


노가다길의 본래의 뜻은 최고등급의 클라이머라도 어쩔 수 없이 팔뚝, 어깨, 등 배, 허벅지, 무릎, 등을 써가며 올라야 하는 침니와 재밍을 할 수 없는 넓은 크랙들을 등반을 하고 나면 온몸에 흙먼지가 묻고 긁히기도 하고 옷도 상하고 바지에 구멍도 나고 땀범벅이 됩니다. 이 모습이 육체노동을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노가다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첫째와 둘째 마디에서 크랙을 뜯으며 바위를 마음껏 즐기다보면 편하게 앉아서 선등자의 등반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아늑한 확보지점이 나온다. 이 곳은 막힌 바위굴 모양을 하고 있어 확보줄을 풀고도 두 명 정도는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다시 넷째 마디가 시작된다. 바로 위로 오버행 크럭스가 나타난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두 손 재밍을 하고 발재밍을 해야 일어설 수 있는 크럭스 구간이다.

넷째 마디는 난이도로만 보면 5.10b에 불과(?)하지만 밸런스가 잘 나오지 않는 구간이 있어 등반이 쉽지 않다. 이 마디를 선등하려면 그야말로 손과 발을 이용한 재밍과 스태밍 등 크랙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등반 기술을 총동원해야만 한다.
넷째 마디는 약 40미터의 거리. 그래서 '진땀크랙'이나 '똥크랙'이란 말까지 듣게 된다. 천금같은 볼트는 모두 3개가 박혀있다. 마지막 20미터의 수직 크랙 구간은 당연히 고정확보물 없이 등반하게 된다.

다섯째 마디 시작점에서 오른쪽으로 조심스럽게 돌아 어렵지 않은 크랙길을 올라가면 5피치 취니드A 종료 귀바위의 장관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고독길이 왼쪽으로는 취나드B 5피치 종료 지점 의대길 종로 지점인 귀바위 테라스가 있다 그리고 동북쪽으로 도봉산 동쪽으로 서울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Posted by wasilla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