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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악서적] 임덕용의 <꿈속의 알프스>
    산악 도서 2015. 11. 18. 09:53




    책으로 오르는 산

    임덕용의 <꿈속의 알프스>

    내 뜨거웠던 젊은 날에 대한 고백 

    글 김민수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아직 윗몸일으키기 1500개 정도는 거뜬하다. 매일 아침마다 두 시간씩 산악자전거를 타며 몸 관리를 한다. 여의치 않은 날이면 세 시간 가량의 속보산행이라도 거르지 않는다.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집 근처 암장으로 가 클라이밍을 한다. 주말 중 하루는 멀티피치, 일 년에 네 번은 거벽등반을 떠난다. 눈만 있으면 세상 그 어떤 경사면도 오르내릴 수 있는 스키 & 스노보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못하는 운동은 없다. 지난 40년 세월 온갖 노는 일에 목숨 걸고 매달렸지만, 어떤 운동이든 시작과 동시에 천재성을 보였다. 담배는 입에 대지 않는다. 어떤 모임에 참석하더라도 술은 종류 불문 한잔만 마신다. 군대에 가서도 남들보다 한 시간 반 일찍 일어났다. 전우들이 곤하게 잠든 시간, 차가운 새벽바람을 가르며 10km씩을 달렸다. 얼어붙은 군용 팬티 탓에 허벅지가 쓸려 피가 엉겨붙는 것도 모른 채. 
    당시 군 동기들이 그를 두고 한 농담이 걸작이다.
    “미친놈이 생리를 시작했나?”

    산서 마니아들이 꼽는 명저 <꿈속의 알프스>

    ▲ 지난 1982년 평화출판사에서 펴낸 <꿈속의 알프스>. 저자 임덕용씨의 산에 입문한 과정과 이후의 이야기, 북벽 등반 과정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어느 운동 중독자의 얘기가 아니다. 야생마의 꼬리를 연상케 하는 말총머리만 제외하면 그의 인상은 일상에서 숱하게 지나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에 진배없다. 그는 산악인이다. 또 스스로를 현역이라고 말하는데 추호의 주저함이 없다. 그것은 산에 대한 그의 사랑이 변함없기 때문이고 또 앞으로도 변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 순간순간을 살아가는데 있어 스스로와 자신이 경외하고 흠모하는 대상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악인이자 사업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세계적인 아웃도어 의류 디자이너이기도 한 임덕용씨. “9세의 정신 연령과 19세의 신체 연령, 그리고 99세의 인생 연령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그의 두 눈은 젊은이들을 무색케 할 정도로 맑음과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파격적인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옆머리를 하얗게 밀었던 몇 해 전과는 달리, 긴 생머리로 넘겨 한 가닥으로 묵은 그의 모습은 흡사 얇은 위장막 뒤에 질주본능을 숨긴 야생마를 연상케 했다. 

    ▲ 2006년 몽블랑 뒤 따귈 삼각 북벽 등반중인 저자. 몸에 걸친 의복이며 장비들은 모두 자신이 디자인 또는 컨설팅한 것이다. 사진 허긍렬


    서두의 내용들은 그가 스물다섯 살이던 지난 1982년에 출간한 책 <꿈속의 알프스>(평화출판사, 1982)와 증보판격인 <내 DNA는 불가능에의 도전>(도서출판 정상, 2007)에 수록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 출판된 지 근 30년이 다되어가고, 그마저도 출판 부수가 초판과 재판 각각 3천부씩밖에 되질 않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극히 적고 중고서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희귀서적이 되어버렸다. 그런 이유로 <꿈속의 알프스>를 얘기하려면 후자에 대한 언급도 함께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산악 명저 중 하나라고. 그건 그가 첨예한 등반을 몸소 실천한 클라이머이기 때문이 아니다. 살을 깎는 듯한 훈련을 이겨내고 알프스 3대 북벽 중 하나인 마터호른 북벽을 한국인 처음으로 올랐기 때문도 아니다. 그건 ‘산’이 주는 매력에 반해 젊은 날을 불꽃같은 열정으로 살아간 한 인간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는 동네 산 친구들과 용돈을 모아 바리깡을 사고, 이발비를 모아 카라비너를 구입했다. 라면땅 두 봉지로 끼니를 때우길 몇 달씩이나 한 끝에 가죽 비브람도 장만했다. 5mm 굵기의 빨랫줄을 20m 가량 산 다음 몸에 묶고 바위를 올랐다. 수업시간에도 바위 생각만 간절할 뿐이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대학입시에 낙방한 그는 재수를 시작하지만 허구한 날 동대문 장비점을 들락거리기 일쑤였다. 두툼한 책가방을 끼고 집을 나섰다가도 어느새 산으로 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스스로를 책망했다. 하지만 재수학원도 ‘산’자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청산학원’을 택했을 정도니 이만하면 그의 ‘증세’가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제 책이 그렇게 인기가 있었나요? 별 대수로운 얘기들도 아닌데 부끄럽네요. 하긴 산에 푹 취해 젊음을 보낸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이기는 하죠. 아마 모르긴 해도 제 책을 읽고 인생 바뀐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할 겁니다.”
    그가 활동하던 악우회에서는 지난 1979년 심의섭 대장이 이끄는 아이거북벽 원정대를 꾸렸고, 윤대표, 허욱 대원이 한국 초등에 성공한 바 있다. 애초 알프스 3대 북벽 완등이 목표였던 악우회는 이듬해인 1980년, 마터호른과 그랑드조라스 북벽을 대상지로 한 원정대도 구성했다. 대원으로 선발된 임덕용씨는 각고의 노력 끝에 마터호른 북벽 초등에 성공했고, 귀국하고 얼마 뒤 <꿈속의 알프스>를 출간했다. 그는 마터호른 북벽 정상에 섰을 때의 느낌을 책속에 이렇게 적었다.
    “10여 년 동안의 끊임없는 트레이닝과 노력이 바로 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겨우 손바닥만 한 넓이의 공간에 바쳐진 것이었는가? 눈물도 기쁨도 아무런 감정도 일지 않는다. 앞으로 보다 더 높은 산을 가기 위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자신과 싸워야 하는가?”

    산에 빠져 지낸 내 어린 날의 초상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나이, 소년은 부모님 손에 이끌려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아이는 맞은편 인수봉에 붙어 몸을 비벼대고 있는 클라이머들을 보고는 숨이 막힐 듯한 감격과 운명적 예감을 느꼈다. 머리가 굵으며 아이는 전문등반의 세계를 흠모하며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등산 장비를 사들였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의 소원은 등산용 로프를 사는 것이었다. 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아이의 삶은 이후 산을 배제한 인생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바위를 오르기 시작한 그는 군대를 제대한 이후 산악회에 가입하며 보다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등반에 입문했고, 히말라야와 알프스의 어려운 난봉 여러 개를 한국 초등했다. 코오롱에서 제품 디자이너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난 1986년, 꿈에 그리던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자 알프스의 밑자락에 자리한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길에 올랐다. 눈 덮인 북벽이 아닌 세계 패션시장이라는 거대한 산에 도전장을 낸 그는 고군분투한 끝에 실력을 인정받아 살레와, 라 스포르티바, 그리벨, 케이랜드, 가몬트 등 세계적인 등산장비 제조업체와 아식스, 아레나와 같은 스포츠의류브랜드 등지에서 수석디자이너로 일한 바 있고 디자인 자문을 해오고 있다. 현재 자신의 등산의류브랜드 ‘스네이크(snake)’를 유럽 각국에 전개하고 있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또 다른 꿈, 전설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인생 여정은 산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산은 제게 지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을 가르쳤고, 끈기와 불가능 앞에서 되돌아서지 않는 용기와 도전의 가치를 심어주었으니까요. 만약 산이라는 세계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 그것은 제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삶의 원동력입니다.”
    인터넷이 생활전반의 말초부위까지 깊숙이 침투한 요즘, 산서를 읽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점점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비교적 남보다 산 사랑이 지극한 사람들의 사정도 비슷한 것이어서, 양질의 산서가 주는 순기능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건 제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와 속도 빠른 인터넷이 있다한들, 그 안에 산과 그곳을 오르는 이들의 정신세계까지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산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산에 대한 겸허함을 갖게 하고 산을 오르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잡게 만든다. 그 속에 펼쳐진 무대가 만년설로 뒤덮인 해외의 고산이건, 고개를 한껏 젖혀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 암벽 위건 간에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책을 서가에서 뽑아든 독자들의 산사랑은 그 방법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덕용씨의 저서들 속에는 산과 관련된 얘기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난과 성취, 기쁨과 슬픔 등이 담백한 문체로 묘사되어 있다.
    흔히 사람들은 개인의 인생을 사회적 성공이라는 일방적인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실상 우리는 경제적 부와 사회적 거취가 개인의 모든 걸 판단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꿈속의 알프스>는 이런 우리들에게 각자에게 허락된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온몸으로 웅변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열과 성을 다해 매 분 매 초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격정적이다.   
    책을 읽은 뒤 가슴 속 깊은 곳을 울리는 울림 같은 게 느껴진다면 배낭을 꾸리는 건 어떨까? 백설이 내려앉은 바람 부는 겨울 산을 뭔가에 홀린 듯 걸어가다가, 안면을 따갑게 두들기는 차가운 눈가루를 맞고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면 허공에다 대고 원망 섞인 괴성을 크게 내질러도 좋다. 그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는 서쪽이다. m

    ▲ <꿈속의 알프스> 증보판격인 <내 DNA는 불가능에의 도전>.
    임덕용씨는 <춤추는 알프스>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조만간 펴낼 계획이다.



    기사 발취 :월간 마운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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