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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8.06.02 1998_김홍빈대장 데날리 원정기




알래스카주 록키산맥에있는 데날리국립공원은 북위 63도 북극에서 322km로 밖에 떨어저 있지 않아 추위가 심하고

백야현상으로 낮이 20시간 등 불규칙한 기상으로 히말라야보다 고소증세가 1000m 이상 빨리 오는 곳입니다.

1913년 미국원정대 허드슨 스턱, 월터 하퍼, 헨리 카슨, 로버트 테이텀에 의해 등정된 이 곳에

한국은 1979년 고상돈, 이일교, 박훈규대원이 등정하였으나 하산 중 고상돈 이일교대원이 사망하였다.

 

나 김홍빈은 1998년 5월 14일에 등정하였습니다.

 

 

김홍빈 대장의 산악이야기 - 매킨리 등반 일지

 

5월 13일

송형근 대원의 비자가 미국 대사관에서 운이 나빠서인지 오늘까지 2번이나 발급이 되질 않는다. 준비를 다 마쳤는데 함께 떠날 수 없게 되어 너무 아쉽다. 새벽 1시 고속버스 편으로 텐트 2동만 서울에서 도착하면 짐 패킹이 마무리 된다.

숙소에는 선, 후배님들이 찾아 와서 격려를 해준다.

 


5월 14일

오전에 지체장애인협회 이재홍 회장님을 방문하고, 재강 형님의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늦지 않게 광주 공항에 도착하여 앵커리지까지 바로 짐을 보내야 하는데 화물이 큰 스키는 김포공항에서 다시 찾아서 보내야 한단다.

 

▲김포 공항에서

 

앵커리지로 가는 비행기를 세 번째 탄다.

사고 이전에는 8,000m 14좌 등반이 나의 꿈이었는데, 91년도 매킨리 단독 등반에서 간단한 식량과 날씨가 등반 전까지는 계속 나쁘다가 도착한 날로부터 너무 좋고, 컨디션도 좋아 쉴 여유도 없이 계속 등반을 하다 보니, 데날리 페이스(5,700m)지점에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 당시 2주 만에 비자를 받았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1주 늦게 출발해 같이 가기로 했던 팀을 만나지 못하여 결국 단독 등반을 계획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쌀 식을 조금씩 줄여 등반 중 식량을 빵과 행동 식으로만 준비해도 견딜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쌀 식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정말 남의 도움 없이 단독 등반을 하고 싶었다.

 

92년 선, 후배님들이 어렵게 준비하여 매킨리에 재도전하였으나 날씨가 좋지 않고 국내 팀의 사고로 실패를 했다. 나는 손을 더 좋게 고칠 수 있을까 싶어 알래스카 병원을 찾아 사고 당시 담당 의사를 만나고 그 외에 여러 곳을 다녔으나 현재의 손 이상으로는 더 좋게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사고 후 7년, 외로움과 싸웠던 그 곳을 향해 이번엔 혼자가 아닌 둘이서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설렌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앵커리지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온다.

벌써 도착인가! 지금부터 시작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온통 등반에 대한 생각 뿐이다. 14일 09시에 도착하여 대한항공 직원들의 배려로 세관을 통과하여 9시 20분에 로비에 나오니 구영근 대한항공 앵커리지 지점장님과 총영사님이 전화통화가 되었다. 점심 약속을 해서 픽업 나온 오갑복 선배님과 영사관에 가서 식사를 하고 앵커리지(Anchorage) 윈디코너(Windy Corner) 장비점에 들려 와실라로 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와실라(Wasilla)의 윈디코너 장비점에서 장비를 구입하고, 식량 점검을 하며 잔잔한 호숫가에 막영을 하고 첫날을 보낸다. 윈디코너 장비점은 미국에 이민 와서 와실라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오갑복씨가 운영하며 여행이나 등반객 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5월 15일

아침부터 흐리고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와실라에서 탈기트나(Talkeetna)로 이동, 레인저 사무실에 들려 입산 신청을 하니 91년 사고 당시 나를 구조했던 Roger가 반가워한다.

 

올해 새로 구입한 컴퓨터 영상으로 쓰레기 처리, 등반 루트, 크레바스,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숙지한 후, 헤드슨 에어택시(Hudson Air Service)에 들려 짐을 두고 숙소(Road House)에 도착했다. 장기간 날씨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출발해야한다. 휴가철이라서 많은 여행객들이 숙소를 예약하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Roger가 퇴근 후 집으로 초대하여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91년 사고 당시 슬라이드 사진 자료들이 많이 있고, 그 중에 한 장을 확대해서 나를 준다고 한다. Roger와 와이프인 Pam은 일요일까지 날씨가 안 좋아서 산으로 못 들어가면 저녁 초대를 하겠다고한다.

 

▲로저 집에 초대를 받아서(로저, 김홍빈, 로저 와이프, 김은주) 

 


5월 16일

비가 내리는데도 탈기트나 시골 마을은 광부의 날 축제로 시끌벅적 분주하다. 오후 늦게까지 비가 내리더니 다행히 햇볕이 나고 경비행기 소리가 몇 번 들리며 헤드슨 항공에서도 비행을 할 수 있다고 연락이 온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도착하니 비가 또 온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비행이 시작되고 초록에 도심을 지나 저 멀리의 만년설의 작은 산들이 점점 커진다. 이름 모를 봉우리들 위를 지나 고대하던 하얀 눈밭에 2번의 착륙 시도 끝에 사푼히 날아 앉는다.

렌딩포인트 의무실! 중간 중간 스쳐 지나가는 지난 기억들이 추위와 함께 가슴 깊이 파고든다.

렌딩포인트(L. P 2,134m)의 터줏대감 앤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깊숙이 눈을 파 평탄 작업을 하여 막영 준비를 하고 눈 위에서 첫 밤을…….

 

▲랜딩포인트

 

 

5월 17일

랜딩포인트에서 12시 30분 출발해 북동 빙하 (2,350m)입구에 18시 도착했다.

아침에 일어나 매킨리 정상을 보니 굴뚝에서 피어나는 두 줄기 연기처럼 눈발이 날리고 날씨는 너무 쾌청하다. 썰매를 달고 스키를 이용해서 내리막을 가니 다른 등반 팀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91년도 등반 때는 스키 바인딩이 부러져 스키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오르막부터는 스키아이젠으로 끼워서 출발을 하는데 오히려 썰매가 스키를 끌어당기고 스키는 전진을 못한다.

또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순간이다. 매킨리에서는 새로 나온 티타늄 스키 아이젠이나, 플라스틱 스키 스킨은 무용지물이 된다. 썰매는 짐이 무거우니 끌어지지 않고 오히려 뒤로 밀린다.

외국팀들은 실로 만든 스키 스킨(씰)을 사용해 스키부츠를 신고 등반을 한다.

 


5월 18일

아침에 날씨가 좋다가 오후부터 화이트 아웃과 함께 눈발이 날린다.

배낭을 메고 무거운 썰매까지 끌며 가파른 급경사면을 스틱도 없이 낑낑대며 발의 힘으로만 오르다 보니 너무 힘들다.

외국팀들은 적은 양으로 스키를 이용해서 2번씩 왕복한다. (C2 2,900m)

 

 

5월 19일

아침부터 눈과 화이트 아웃으로 시계가 흐려서 오후에 데포지 짐을 챙겨 2시간 정도 운행을 하다가 데포 시키고 C2로 하산했다. 눈은 하염없이 내려 텐트주위에 눈을 치워도 끝이 없다.

 


5월 20일

날씨는 계속 나쁘다.

스키를 사용할 수 없으니 필요 없는 스키 짐까지 늘고, 발이 눈에 빠지기 때문에 힘이 더 든다. 다른 사람들은 스키를 이용해 가볍게 오르는데, 그 사람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C3(3,900m)에 도착하여 텐트를 설치해 놓고 어제 데포 시켜 둔 짐을 운반하려 스키를 타고 내려간다. 내려갈 때는 재미있는데 올라올 것이 꿈만 같다.

내려올 때는 크레바스가 양 옆에 있었는데, 데포지 짐을 찾아서 올라오니 눈보라와 화이트 아웃으로 5m 앞을 분간할 수 없다.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설동을 파고 있기로 하고 설동을 한참 파는데 터키팀 남, 여 2명이 안자일렌을 하며 올라오더니 한참 상의한 후 자기들은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도 스키와 썰매를 둔 채 배낭만 메고 C3로 올라가기로 하고 같이 길을 찾아 텐트에 도착하니 탈진 상태다.

 


5월 21일

휴식

날씨는 계속 화이트 아웃, 어제 가지고 오지 못한 데포지 짐을 찾아 올라왔다.

 


5월 22일

09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나 11시 20분 C4로 출발

모터사이클 힐을 지나니 91년도와는 지형이 많이 다르다.

윈디 코너를 지나서 150m의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야하는 크레바스, 4300m의 C4가 생각보다 너무 멀리 있는 것 같고 화이트 아웃이 생기면서 시계가 흐려진다.

매킨리 시티에 도착하여 캠프지를 찾아 텐트를 설치하고 내려오는데 화이트 아웃과 눈이 많이 내려서 앞을 분간할 수 없고 중간 중간 언제 무너질지 모를 크레바스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특히 이런 구간에서는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안자일렌으로 등반 해야하는데 사고 시 손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등반을 해야 한다.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후배 앞에서 내색할 수도 없고 후배는 빈 썰매를 달고 내려와 하산이 늦어진다.

 

화이트 아웃이란 심한 눈보라와 눈의 난반사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현상으로, 화이트 아웃이 되면 극지에서 천지가 모두 백색이 되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발 밑만 보이며 1m 앞부터는 높낮이를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넘어지고 헛발을 딛기 일쑤다. 주위의 지형을 분간하기 힘들고, 눈까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 고글에 눈이 달라 부터서 얼기 때문에 시야가 더 안 좋아진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 다음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캠프사이트를 보니까 살았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조금만 출발을 일찍 하면 이런 고생은 안 하는데…….

 


5월 23일

계속해서 눈과 바람이 불어댄다.

다른 팀들도 텐트 안에서 눈을 털고, 텐트 주위에 눈을 치우고, 버너 피우는 소리 외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C4의 텐트가 잘 견디고 있는지…….

운행 일정도 계획보다 날씨 때문에 늦어져 걱정이 된다.

내일은 C4에 올라가야 되는데 날씨가 도와주길 바랄 뿐이다.

보통 C3 텐트안의 온도는 낮 영하 5도, 밤 영하 10도이다.

 


5월 24일

일어나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은 있지만 시계는 좋다. 랜딩포인트에 경비행기 이, 착륙 소리가 들린다.

11시경 출발했는데, 모터사이클 힐 위는 바람이 시속 50km 정도로 불고, 200m의 급경사에 올라서니 전진이 어려울 정도의 바람이 불며 눈가루가 날려서 2m 앞도 보이질 않고 서 있기조차 힘들다. 30분 정도 완경사를 지나니 급경사가 나타나고 윈디코너에는 시속100Km 이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안자일렌을 하며 엉덩이를 눈에 대고 기어 내려오는 팀, 바위 뒤에 기대어 바람을 피하는 팀, 데포를 시키고 내려가는 팀들이 보인다. 우리는 2시간 정도 기다리기로 하고 김대원을 바위 뒤로 데려와 매트리스 위에 앉아 바람을 피하게 한 후 혹시 몰라서 텐트 칠만한 곳을 찾아보려고 돌아다니는데, 김대원이 잠깐 일어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매트리스를 한 장을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점점 더 높이 날아가 버린다.

김은주 대원이 떨고 있으니까 내려가는 팀들이 같이 내려가자고 한다, 하지만 내려가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윈디코너를 지나 150m의 크레바스만 잘 지나면 설원이고 캠프 설치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둘이 윈디코너를 넘기로 하고 5m의 줄로 안자일렌을 하면서 몸을 벽 쪽에 바싹 부치고 발로만 버티면서 무사히 우측의 맞바람을 맞으면서 크레바스를 넘어서니 바람은 심하지 않다. 뒤에 2명이 우리 뒤를 따라온다.

역시 지명다운 바람이 불어 댄다. 윈디코너다.

 

▲윈디코너 강한 바람에 돌맹이가 날아 다닌다 

 

화이트 아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C4의 캠프지에 다다르니 살았다는 안도의 심정은 잠깐이고 텐트가 보이지를 않는다. 상황을 보니 텐트가 바람에 찌그러지니까 철수를 한것 같아서 레인저 사무실에 가서 물으니 걷어 놓았다고 한다. 눈 블럭을 텐트 높이의 반 정도 쌓아 놓아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다. 정상 갈 식량과 장비들이 텐트 안에 있었는데, 바람 때문에 3인용 텐트를 다시 쳐야했다. 눈보라 때문에 텐트 안에 눈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오고 텐트 문만 열면 눈가루 때문에 앞이 안보일 정도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신발 끈을 묶는 일이나 텐트, 침낭 등의 지퍼 올리는 일이 너무 힘들기만 하다. 특히 날씨가 워낙 추워 장갑을 벗으면 손에 온도가 떨어져 손목부분에 혈액 순환이 안 되기 때문에 동상 위험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소변을 봐 주어야 한다. 하루 종일 소변을 한 번 봤는데, 그것도 외국팀에게 부탁해서 볼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이것은 앞으로 등반 중 해결 해야 할 과제다.

아……. 텐트 안은 천국이다. 윈디코너의 바람을 생각하면…….

 


5월 25일

텐트 자리를 옮기는 게 급선무다.

아침을 먹자마자 캠프사이트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3군데 중 제일 괜찮은 장소를 찾아 표식 기를 꽂고 오후 4시까지 텐트를 쳤다. 짐 정리를 하고, 내 키보다 높게 스노우 블록을 쌓아 눈으로 바람구멍을 막아 텐트를 다시 설치하니 오늘은 더 좋은 천국이다.

 

▲스노우 블럭을 텐트보다 높이 쌓아야 바람에 견딜 수 있다.


밤 11시가 지나 볼펜이 안 나오면 4초 동안 입에 넣고 있다가 불면서 일지를 기록하는데 왼손이 너무 시리다. 텐트 안이 영하 4도이고 성에가 차기 시작한다. 헤드 웰 위에는 바람소리가 전투 비행기 소리처럼 들린다. 텐트 밖에도 바람이 심해 눈가루 때문에 밖을 나갈 수도 없다.

이 와중에 김대원은 코를 골고 잘도 잔다.

앞으로 4~5일 후에나 날씨가 좋아 진다는데, 11시 30분이 지나니까 저녁 노을이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아 멈추어 다오.

 


5월 26일

날씨가 안 좋은데 30명 정도가 헤드웰쪽으로 등반하고 레스큐 걸리에 3명이 등반을 한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포레이커봉, 헨터봉, 눈밭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레인저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레스큐 걸리에 한 사람이 추락하여 크레바스에 빠졌다고 한다. 정말 보니까 2명 밖에 안 보인다. 구조대가 출동을 했는데, 날씨는 너무 춥고 변덕이 심하다. 오후엔 2번이나 날씨가 급변해서, 주위에 구경을 갈때에도 크레바스가 많아 안자일렌을 하고 가야한다.

10시경 추락한 사람은 갈비뼈가 3개 부러지고 하이포서미아(저체온)에 걸렸지만 구조가 되었는데 자원봉사 구조대원 1명이 구조하러 갔다가 크레바스 빠져 죽었다고 한다.

 

 

5월 27일

어제 저녁부터 정상 갈 준비를 해 놓고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데 아침부터 폭풍이 불기 시작하여 3명이 먼저 등반을 하다가 다시 내려오고 캠프지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89년 동계 에베레스트 바람보다 더 하다.

레인저 사무실에 들려 와실라에 전화를 하고 날씨를 물으니, 언제쯤 좋아 지는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른단다.

인천대 팀이 어제 늦게 올라왔다고 텐트를 방문했다.

 


5월 28일

오후에 날씨가 좋아져서 헤드 웰(4,800m) 얼음 밑까지 고소 적응차 다녀오는데 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머리는 약간 아프다. 내일은 빌리지(5,200m)까지 가기로 하고 3일치 식량, 간식 등 장비를 챙겨놓았다.

 


5월 29일

(시티 4,300m→(3시간 30분)헤드웰 →(3시간)빌리지 5,200m)

처음으로 아침부터 가장 좋은 날씨다. 바람, 구름 한 점 없는데다가 걷다 보니 땀이 다 난다.

200m 얼음 구간을 통과하는데 가기 전에는 걱정했지만 겨울철에 빙벽훈련을 많이 했던 것으로 자신감을 갖고 하니까 오히려 재미있다.

 

 

KARL이라는 앵커리지 친구가 쥬마(등강기)를 통과해 주어서 30명 정도가 줄을 서서 올라 헤드웰에 도착하니 여러 팀이 쉬고 있다. KARL과 물, 간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사진을 찍은 후 급경사인 릿지를 넘으니 시티가 보인다. 칼날 릿지를 지나 빌리지에 도착하니 약간의 고소증세가 있다.

 

▲헤드

 

아스피린 1알을 먹고 2시간에 걸쳐서 바닥에 눈을 깎고 다듬어 텐트를 설치한 후 바람 때문에 스노우 블럭을 텐트 높이로 쌓고 나니 인천대 팀이 도착한다.

 


5월 30일

날씨가 나빠서 빌리지(5,200m)에서 대기했다.

눈보라와 화이트 아웃으로 밖을 나갈 수가 없었는데, 오후 늦게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오늘도 몇 팀이 오후 늦게 캠프지에 도착한다.

컨디션은 하루 쉬어서 아주 좋다.

 


5월 31일

07 시경 기상하여 정상에 갈 준비를 하고 09시 30분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바람이 불어 매우 추운데, 전년에 비해 바람이 많이 불어 눈이 쌓이지를 않아 경사도가 50~60도 이상으로 너무 심해 사면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밸런스 잡기가 어렵다. 데날리 페이스 11시 15분에 도착했다.

 

점점 잊혀져 이곳에서 사고 당했다는 기억마저도 희미해진 상태다.

이곳에서 사고가 났었지! 가끔씩 난 평생 운동화 끈도 매지 못하고 손가락 없이 살아가야하는가 하고 비관도 해보지만 아직도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갖고 "꼭" 정상에 오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상을 향하여 

 

데날리 페이스 우측에 풍향계가 있고, 얼마를 오르니 정상이 보인다. 바람이 세차지고, 손이 시리기 시작한다.

풋볼 그라운드에서 배낭을 두고 카메라와 정상에서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출발했다.

300m의 50도 정도의 경사도를 지나 200m의 칼날 릿지를 지나니 북미의 최고봉 정상이다.

 

 





 

 

결국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진 몇 장만 찍고 바로 하산 준비를 했다.

예상 시간보다 35분 정상에 빨리 올랐다. 날씨가 안 좋아질 기미라고 말한지 5분도 안되었는데 화이트 아웃이 생기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릿지에서는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엉켜 우왕좌왕하는데, 만약에 추락하면 4,000m…….

낭떠러지 반대편으로 몸을 바싹 붙여서 신속하게 릿지를 통과해 하산을 하는데 앞이 보이질 않아 사람 소리를 듣고 표식 기를 찾으면서 내려갔다. 가다가 길을 잃으면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서 내려가는 과정으로 풋볼 그라운드에서 배낭을 찾아 내려오니 시야가 조금씩 좋아진다. 이제는 다리가 휘청거린다.

 

▲베이스 캠프(4,200m) 구조대 사무실 

 

캠프지에 도착하니 20시 15분이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15분 오버가 되었다.

날씨만 좋았으면 더 정확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무사히 정상을 등정해서 정말 기쁘다.

등반 기간 동안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내심 걱정도 많이 했는데,

이틀 날씨가 좋아서 그 중 하루를 매킨리의 신이 정상의 길을 열어 준 것 같다.

올해는 많은 팀들이 정상을 가지 못했다

 


6월 1일

날씨가 계속 화이트 아웃이다.

시티까지 하산하기로 하고 70도가 넘는 얼음 구간을 지나니 화이트 아웃으로 아래가 보이질 않는다.

200m의 청빙 구간을 줄이 팽팽한 이유로 하강기 사용은 못하고 카라비너를 통과하여 겁도 없이 무사히 하산을 했다.

캠프에 도착하여 레인저 사무실에 가서 정상 등정 소식을 전하니 축하를 해준다.

 

 


6월 2~4일

매킨리 시티 텐트를 철수하고, 윈디코너를 지나 랜딩포인트에 도착하여 애니한테 등정 축하를 받고 헤드슨 에어택시로

탈키트나에 도착했다.

 

▲경비행기 탈기트나에서 렌딩 포인트 왕복 

 

토마토 스프와 빵으로 배를 채웠는데도 잠이 오질 않아 인천 팀들과 늦게까지 등반 이야기를 나누었다.

 


6월 5일

임대용 총영사, 박규옥 영사님으로부터 등반 전에도(5월 14일)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오늘도 점심 초대를 받았다.

 

▲알래스카 한국영사관 직원분들과 함께

 

 

앵커리지 시내를 관광하는데 여기는 IMF에 걸맞은 중고 의류나 속옷, 잡화 등 가게들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축구화=2$, 반바지=2$ 2EA(하나는 입던 것 주고 바꾸었다), 등산용 물 컵 50센트.

이곳은 우리나라 재활용품처럼 형식적이지 않으면서 값도 싸고 치수도 일일이 표시되어 있다.

 

 

6월 6일

프로비던스 병원에 가서 2시간의 수소문 끝에 91년도에 간호해준 SCOTT를 만났다. 다들 직장을 옮기고 혼자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에 공항에서 프레드 힐만, 91년 매킨리 사고 당시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쳐준 영어 선생님을 만서 너무 반가웠다. 등반 전에 연락을 취했을때는 연락이 닿지 않았었던터라 더욱 반가웠다.

 

▲김홍빈, 오갑복, 프레드 힐만(영어 선생님), 오갑복씨 아내(형수님)

 


6월 7일

새벽 04시 20분 앵커리지 공항에서 출발해 6월 8일 아침 06시 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한승 대한항공 광주지점장님의 배려로 광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직원들이 나와서 격려와 축하를 해주었다. 10시 광주공항에 도착하니 임성욱 광주광역시 장애인종합복지관장님 그리고 임형칠 대산연기술분과 이사, 아내, 현숙씨, 후배들, KBC 방송국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너무들 반갑다.

등반 중 힘이 들면 에베레스트 등반을 상상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힘을 달라고 하며 걸어가면서 빌었다.

대한민국 450만 장애인들과 산악인들의 힘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본 내용은 김홍빈 대장의 블로그에서 발취 하였습니다.]
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treksta051














Posted by wasilla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