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콩카구아, Aconcagua(6,959m)(22,837 ft) 남미대륙 최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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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남미 아르헨티나 

남미 안데스 산맥,아르헨티나 멘도사(Mendoza)주의 라스 헤라스(Las Heras)지역에 위치, 위도 32°39´S,경도 70°1'W. 안덱스 산맥은 남아메리카 대륙 서쪽에서 태평양 연안을 따라 무려 8,000Km나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으로 중부에는 해발고도 5,000m이상의 높은 산들로 이어져 있으며 최고봉이 아콩카구아다. 

남반구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위도 차이와 동서 두 사면의 강수량 차이가 크며 지역차도 뚜렸하다.거주지역은 거의 열대고산 기후이고 각국의 주요 도시가 이곳에 위치해 있으며,잉카제국도 이 지역에서 번영 하였다. 원추화산의 산 모양을 이루어 오랬동안 화산으로 인정되어 왔으나 화구도 없고 분화의 기록도 없다. 설선고도는 약 4500미터로서 만년설과 빙하로 덮여 있다. 이 지역 특유의 바람인 백풍(Viento Blanco)은 시속 160킬로미터에 이르고 눈을 동반한 강풍으로 등반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질적인 등반의 역사는 스페인의 지배가 시작된지 300여년이 지난 후인 19세기경에 이르러서 시작되었다.본격적인 등반은 1883년 독일인 Paul Gussfeldt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 되었다.1897년 1월 피츠 재랑드(Fitz Gerald)의 두번째 원정에서 스위스의 가이드 마티아스 주브리겐(Matthias Zurbriggen)이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하여 아콩카구아 정상에 선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한국대의 아콩카구아 등반은 1980년 서울 문리대 OB의 북면등반으로 시작되어 1981년 1월 18일 공응대,최중기 대원이 정상등정에 성공하였다. 



***등반루트*** 

====북면과 서면 
File:Aconcagua route 1a.jpg

1. 노말루트(1897년 1월 14일) 
2. 서벽 멘도치나 루트(1988년) 
3. 서벽 에스테반 에스카이올라 루트(1991년) 
4. 남서릉 이바네즈-마르밀로드 루트(1953년) 

====남면 

5. 선 라인 루트(1988년) 
6. 슬로베니아 루트(1982년) 
7. 프랑스 루트(1954년) 
8. 프랑스 루트의 메스너 변형루트(1974년) 
9. 프랑스 루트의 일본 변형루트(1981년) 
10. 프랑스 루트의 슬로베니아 변형루트(1982년) 
11. 라 루타 데 라 룰레타(1988년) 
12. 중앙 루트(1966년) 
13. 프랑스 직등루트(1985년) 
14. 아르헨티나 루트(1966년) 

====동면 

15. 동릉 아르헨티나 루트(1978년) 
16. 폴란드 빙하 루트(1934년) 
17. 동면 직등루트(1961년) 

북면-노멀루트 
아콩카구아는 아르헨티나 서부 안데스산맥에 있는 아메리카대륙의 최고봉, 해발고도 6,959m 산의 정상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을 이루는 안데스 주능선에서 12km 동쪽의 아르헨티나 영내에 있다. 남쪽 20km에는 양국을 잇는 가장 중요한 교통로인 우스파야타고개(3,800m)가 있다. 아르헨티나의 멘도사에서 서쪽으로 200km 정도 떨어져 있고,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의 동북쪽으로 110km지점에 있는 아콩카구아는 북미 최고봉인 알레스카의 맥킨리산보다 750m나 더 높다. 산의 생김새가 원뿔모양이고 화산암질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어 한때  화산으로 추정되었으나 중생대 백악기 후기의 안산암과 화산 쇄설암으로 이루어진 비화산성 산임이 밝혀졌다. 정상에는 빙하가 있는데 주위가 건조기후이기 때문에 강설량이 적고 만년설지대는 해발고도 5,000m 이상으로 한정되어 있다. 

1897년 1월 14일 스위스출신의 위대한 가이드, 마티아스 쭈르브리겐은 인간 최초로 아콩카구아의 정상에 올랐다. 그는 히말라야, 뉴질랜드 등지에서 수많은 등반을 성취한 사람이었다. 당시 그의 고객이었던 영국의 에드워드 프르제랄드는 정상을 600m 남겨 놓고 고산병에 걸리고 말아 전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으나 쭈르브리겐의 단독등반을 결행토록 하였다. 이리하여 독일의 대학자 파울 규쓰펠트박사가 처음으로 등반을 시도하였던 아콩카구아의 정복사는 20세기에 접어들기 전에 막을 내렸다. 그후 많은 산악인등에게  매력적인  목표가 되어 여러 사람들이 정상에 섰다. 그러나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최고시속 260km의 강풍을 수반하는 사나운 폭풍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곳의 등반시즌은 한국과 달라서 12월에서 2월말까지이며 이때에 칠레 산티아고의 교외에서도 볼 수는 있지만 입산을 위해서는 멘도사에서 출발한다. 이곳(멘도사)에서 후엔 델 잉카로 이동하여 오르크네스 계곡을 지나 베이스인 프라자 데 뮤라스에 도착하면 4,250m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에서 고소적응이 잘되면 약 5-10일 이내에 정상에 설 수 있으며, 급변하는 기후와, 고산병의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남벽 

아콩카구아는 아메리카대륙의 최고봉이다. 이 산은 안데스 산맥의 맹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지역에 솟아 있다. 케쥬아어로 '바위의 수렵장', 또는 아이마라어로 '눈의 산' 이라는 뜻의 이름인 이산의 남벽은 특히 험하기로 이름나 있다. 폭이 수천 미터, 벽의 높이가 3,000m가 넘는 이 남벽은 광활한 오르코네스빙하 위에 우뚝 솟아 있으며 그 정상 아래는 죽음의 빙하, 거대한 쇄석의 사면, 설전 등 황막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다. 

경사도와 난이도에 있어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이 벽은 I급에서 VI급의 오버행 등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등반기술을 요하는 여러 가지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갑자기 몰아치는 폭풍설과 깎아지른 암장의 연속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일반 루트로 오르면 특별한 악조건의 자연변화가 없는 한, 별로 어려움 없이 등반할 수 있으므로 표고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등반대들이 해마다 원정길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남벽을 오르는 등반은 현대의 톱클라이머들에게도 최고의 등반 능력과 풍부한 경험과 일대 모험을 요구하는 곳이다. 

1897년 영국 등반대가 첫 등정에 성공한 후 어느 누구도 아콩카구아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4년 당시 알프스에서는 최후의 삼대 과제의 하나로 불렸던 아이거 북벽의 등정을 노리는 경쟁이 한참이었던 무렵에 홀연히 폴란드 등산대가 이 산의 동쪽을 공략하여 오늘날 아콩카구아의 이상적인 루트라 할 수 있는 빙벽루트를 개척하였다. 하지만 정상에서 거의 3,000m의 높이로 오르코네스빙하에 깎아 떨어진 남벽은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루트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알프스의 3대 북벽인 마테호른, 아이거, 그랑드 조라스보다 한 단계 어려운 루트로 평가되었다. 

제 2차대전이 끝난 후 그 누구보다도 먼저 히말라야의 8,000m봉(안나 프르나)을 정복한 프랑스의 리오넬 테레이가 귀도 마뇨느 일행과 함께 1952년 처음으로 이 남벽의 등반가능성을 발견하고 마침내 1954년 극적인 상황 속에서 초등정을 이루어냈다. 프랑스 등반대는 취약한 이 거벽에서 마구 떨어지는 낙빙의 위험을 무릅쓰고 남벽의 중앙부에 돋보이는 측릉을 공략한 다음 정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정상 직하의 람페를 등반하였다. 이 최후의 정상공격은 실로 사투의 연속이었다. 

진퇴양난의 극한 상황 속에서 루시앙 베르라르디니, 에드몽 데니, 피에르 르쥬에, 로베르 파라고, 귀플레아드리앙 다고리는 손발에 심한 동상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진을 포기하지 않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마침내 정상에 서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후 1966년에 아르헨티나의 게오르크 아이케스와 오마르 펠레그리니가 남벽의 우측부분을 대각선 방향으로 오르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한스 센버르거와 루이스 폰루즈가 국제자연동호회 안데스 원정 계획의 일환으로 프리츠 모라베크의 지휘하에 전격적인 등반을 감행하여 성공하였다. 1974년에는 오스트리아 남티롤의 안데스 원정대가 대설전으로 통하는 남벽의 직등루트를 성공함으로 직등 스타일의 등반을 이 벽에서 성공하였다. 남벽에 맞수 격인 서벽은 1965년 젠메즌팀이 올랐다. 





Posted by wasilla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