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진 어머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건강하게 돌아와 고맙다, 내새끼"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단연 어머님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 어머님의 환한 웃음을 접하고 나서야 내가 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맥킨리 등정!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지만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 어려운 조건들이 한 둘 해결되면서 실타래가 풀리듯 모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결과 또한 좋았다. 서울은 찜통과 같은 한 여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이리저리 문제가 많았던 준비기간에서 부터 걸음을 걸으면 허벅지까지 눈에 푹푹 파묻힐 듯한 등반의 기억이 아직까지 선하기만 하다. 

 

5월 20일. 드디어 지난 반년간 나의 온 마음을 가득 채우던 맥킨리를 향해 출발. 그동안 원정대 이상으로 염려해주신 청화산악회 선배님들의 환송을 뒤로하고 비행장을 이룩하면서 등반성공과 무사귀환을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옆에 계신 종화형과 광선형 또한 굳은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면서 원정에 대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듯하다. 공항에서 만난 부천의 계암산악회 또한 맥킨리를 목표로 출발하는 팀이다. 모두 아홉명으로 건강해보이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이들은 원정 출발에서부터 돌아올 때까지 거의 우리팀과 같이 등반하게 되었는데 등반중에 서로에게 도움을 많이 주어서 나중에는 같은 팀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날자변경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떠난 시간은 20일 저녁이었는데 도착한 시간은 같은날 오전9시 45분이었다. 공항에는 오갑복씨와 이석무씨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오갑복씨는 이민가기전에 한국에서 산과 인연을 맺었던 분으로 현재는 Wasilla에서 Windy Corner라는 등산장비점을 운영하면서 한국원정대에 대한 안내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다. 이석무씨는 오갑복씨 일을 도와주시는 분으로 청화산악회 선배님이시다. 산악회에서도 이석무씨가 Alaska에 있다는 소식을 모르고 있었기에 도착해서야 이석무씨가 산악회 선배님임을 알게 되었는데 머나먼 이국땅에서 산악회선배님을 만나게 되니 무척이나 신선한 느낌이었다. 

 

Wasilla에서는 오갑복씨집 아래에 있는 아름다운 호숫가의 캠핑장에서 지냈다. 산에 들어가기전에 필요한 장비는 Windy Corner에서 구입하고, Carrs라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식품을 구입하면서 등반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5월 22일 오전. 드디어 데날리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기 위해 Talkeetna로 이동하였다. 이 곳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맥킨리 등반의 기점인 랜딩포인트(Landing Point)로 이동하게 된다. 경비행기를 타기 전에 레인져 사무실에 들려 입산신고를 하고 1인당 125$의 입산료를 지불하였다(총 입산료는 150$이지만 25$은 입산신고서 미리 예치하게 되어 있다). 간단하게 안전에 대한 교육을 받고 비행장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비가 와서 경비행기가 뜰 수 없다는 비행사측의 설명때문에 다시 Wasilla로 돌아 와야만 했다. 날씨 탓에 일정이 늦어질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오후에는 날씨가 좋아져 Talkeetna로 이동하여 경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저녁무렵에야 랜딩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Talkeetna에서 비를 맞으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때문에 오히려 기분은 좋았다. 


랜딩포인트에 내리면서부터 세상은 온통 흰 눈의 만년설로 뒤덮힌 빙하지대이다. 5월말에 무릎까지 빠지는 흰 눈을 밟으며 '드디어 맥킨리구나'라는 감흥이 밀려온다. 랜딩포인트에는 우리와 함께 도착한 계암산악회외에 검악산악회가 헌터봉을 목표로 베이스를 치고 대기중이었다. 랜딩포인트에 들어온 시간이 늦어 바쁘게 텐트를 치고 저녁을 해 먹고 나니 밤이 이미 많이 늦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모두 잠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주위는 아직 환하기만 하다. 극지방에 가까운 지역이어서 나타나는 백야현상탓이다. 하루에 3시간 정도 약간 어두울뿐 거의 온종일 밝은 대낮과 같다. 그만큼 해가 길기 때문이다. 오지 않는 잠을 뒤척거리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5월 23일. 각자의 짐을 나누고 데포시킬 것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정오가 넘어간다. 스키에 씰(seal)을 붙이고 나머지 짐을 정리하고 나니 15시 정도. 계암팀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외국대도 모두 출발한 상태였다. 랜딩 포인트에서 처음 출발하는 지점은 약 1km정도가 아래로 경사진 구간이다. 스키에 익숙하지 못한 종화형이 자꾸만 뒤로 처지다가 나중에는 보이지도 않는다. 20분정도 기다려도 보이지 않아 사고라도 났나싶어 황급히 올라가보니 종화형이 스키를 조정하고 계신다. 스키가 너무 헐거워 스키를 조정하느라 아주 애를 먹으신 모양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루한 빙하지대를 횡단하여 캠프1에 도착한 시간은 20시30분. 낮동안은 해가 뜨거워 영상 20도가 넘는 기온이더니 해가 지기시작하면서 기온은 급강하. 거기다 바람까지 가세하자 손이 곱아 텐트조차 제대로 치지 못할 상황이다. 텐트를 펼쳐 폴을 세우고 짐을 정리해 텐트로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에 텐트가 바람에 날려 간다. '저게 없어지면 등반은 끝이다'라는 생각에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100여미터를 달려가 겨우 텐트를 잡았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곳의 고도는 2,500m에 가까운 곳.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숨이 가빠왔다. 겨우 텐트를 끌고 돌아오니 한쪽 폴이 부러져 있다. 비상용으로 가져왔던 폴을 이어 겨우 찌그러진 형태로 나마 텐트형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날 저녁에 내린 결론은 덥더라도 좀 더 일찍 출발해서 해가 지기전에 다음 캠프까지 도착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또한 스키와 같은 장비는 사전에 미리 사용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도 좋은 교훈으로 배울 수 있었다. 


5월 24일. 어제보다 이른 시간인 12시 30분경에 출발하였다. 점차 경사가 심해지면서 허리 뒤에 매단 썰매의 하중이 등반을 괴롭힌다. 한발한발 내딛기가 무척이나 힘이들지만 숨을 고르며 천천히 올라간다. 

온통 흰 눈에 뒤덮힌 세상은 단순한 아름다움의 차원을 넘어서 신비함까지 담고 있다. 한국의 겨울산에 비해 거대하기만한 맥킨리의 능선을 보며 또 다른 산의 모습에 눈뜨고 있는 나를 깨닫는다. '이러한 아름다움, 이러한 신비감의 산도 있구나! 히말라야의 산들은 또 어떤 모습일까?' 산과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무르익어 간다. 숙명처럼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산. 오래전부터 이 만남을 준비하고 기대해 왔으면서도 언제나 산과의 만남은 신선하기만 하다. 

올라가다 보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하산중이었다. Mountain Blue라는 팀 소속으로 혼자 왔다고 한다. 베이스 캠프에서 대기하던중 바람에 텐트 폴이 부러져 텐트를 버리고 하산하는 중이라고 했다. 어제의 일이 떠올라 다시한번 바람에 대한 주의가 필요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캠프2에 도착한 시간은 16시 50분. 어제에 비해서 힘은 들었지만 점차 빙하지대에서의 운행에 익숙해짐을 느낀다. 

 

5월 25일. 오전에 일어나니 바람이 많이 분다. 경비행기가 머리를 돌며 전단을 뿌려대고 있다. '날씨가 나빠지니 등반을 하지말라는 것일까?' 모두들 불안감에 하늘만 바라보지만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날씨는 점차 좋아지고 바람도 약해져 간다. 올라가자! 계암팀과 논의끝에 계속 운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캠프2에서 캠프3로 오르는 코스는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코스로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심해 힘이 들고 점차 고소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고도(3,500m)이다. 캠프3는 모터사이클 힐의 바로 전면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원수산악회(원주-수유리 클라이밍 아카데미 합동대) 3명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날씨가 워낙 안좋은 상태에서 고생한 탓에 그들의 코와 입술 주변은 온통 부르터 있었다. 우리팀의 성공을 기원하며 내려가는 그들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이제부터 스키운행은 끝나고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구간이다. 인수봉을 오르기 직전처럼 온 몸의 신경이 긴장감에 파르르 떤다. 모든 대원들이 약간의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약간의 두통이 있어서 아스피린을 한 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온다. 저녁에 텐트 사이트 만드는 작업을 하면서도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차를 끓여 마시며 빌고 또 빈다. '고소여, 오지말아라!' 

 

5월 26일. 아침에 일어나니 광선형 얼굴이 완전히 찐빵맨이 됐다. 퉁퉁부어오른 얼굴에 종화형과 나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점심때가 지나면서 점차 붓기가 가라앉는다. 광선형의 컨디션이 안좋아보였지만 짐 일부를 모터사이클힐 위까지 데포시키기로하고 14시경에 출발하였다. 모터사이클힐은 지금까지 올라왔던 언덕에 비해 훨씬 가파른 구간으로 이 구간을 오르던 중 광선형의 뒷꿈치가 까졌다. 모터사이클힐을 완전히 돌아 윈디코너 입구까지 올라가서 보니 광선형의 양쪽 뒷꿈치가 동전만한 크기로 까져있었다. 운행이 쉽지는 않았지만 윈디코너에 바람 한점 없는 좋은 날씨여서 그냥 내려가기가 아까왔다. 윈디코너 끝부분까지 짐을 데포시키기로 하였다. 하지만 눈에 바로 보이는 지점인데도 그 거리는 좀체로 가까와 지질 않는다. 2시간 가량 걸어서야 윈디코너 끝 지점에 도착했다. 1m가량의 깊이로 눈을 파고 짐을 묻었다. 내려오는 길은 수월했으며 시간도 짧게 걸렸다. 계암팀은 오전 10시에 출발하여 베이스 캠프까지 짐을 데포시키고 20시경에 내려왔다. 대부분의 대원이 피곤한 모습이었다. 상당히 부담이 됐을 것이다. 


5월 27일. 아침에 일어나니 광선형은 또다시 찐빵맨이 되어 있다. 종화형도 얼굴이 많이 부었다. 나는 눈이 조금 충혈되어 있다고 종화형이 얘기하지만 별다른 고소증세는 없다. 계암팀은 대장님이 고소가 와서 다른 두명의 대원과 함께 하산하였다. 우리팀은 얼굴이 부은 것 말고는 특별한 고소증세는 없어서 다행이다. 하지만 광선형이 발 뒤꿈치의 통증이 심하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반창고 등을 통해 응급조치를 하고 12시경 출발하였다. 짐이 줄어서 인지 전날 데포지점까지 4시간만에 도착하였다. 데포한 짐을 찾아 각자의 짐을 분배하고 나서 출발한 시간은 16시 30분. 

이곳에서 베이스 캠프까지는 크레바스가 발달해 있고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상당히 지겨운 코스이다. 그동안 크레바스를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없었던 탓에 크레바스의 끝없는 깊이에 상당히 놀랐다. 과연 안자일렌이 필요하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베이스 캠프(4,300m)에 도착한 시간은 18시경. 텐트를 치고 물을 끓인 후 저녁 할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종화형과 광선형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보이질 않는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 싶어 차를 끓여 마중을 나갔다. 20시경 베이스 캠프에서 500m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모두 탈진 상태였다. 차를 나눠준 후 광선형의 썰매를 받아 캠프지로 들어왔다. 캠프지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꿀차를 끓여 마시고 나서야 조금씩 원기를 되찾아 갔다. 모두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5월 28일.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베이스 캠프에 데포할 품목을 구분하고 가지고 올라갈 물품을 정리하였다. 13시 30분에 맥킨리의 웨스트 버트레스 코스에서 가장 경사가 심하다는 헤드월 상단에 짐을 데포시키기 위해 출발하였다. 헤드월을 올라가는 구간은 무척이나 가파른 구간이었으며 상단 삼분지 일 가량은 주마링으로 올라가는 구간으로 나의 경우에는 웨스트 버트레스 구간에서 가장 힘이 많이 들었던 구간이었다. 16시40분경에 도착하여 짐을 데포시키고 종화형을 기다렸다. 17시30분경 종화형이 도착하여 종화형의 짐까지 마저 데포시킨 후 내려왔다. 저녁을 먹고 차를 끓여 마시는 중에 계암팀에서 사람이 왔다. 대원중에 한사람이 고도폐수종에 걸려 하산을 해야 겠는데 텐트가 없다며 우리팀의 소형텐트(2인용)를 빌려 달라고 하였다. 텐트 1동을 빌려주고 나니 우리팀의 텐트가 비좁아 계암팀의 대형텐트(5인용)로 옮겨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계암팀은 고소증세로 오전중에도 두사람이 하산하는 바람에 두명밖에는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5월 29일. 오늘은 하루 휴식을 하기로 한 날이어서 마음 편하게 쉬고 있었다. 그러나 맑던 날씨가 오후가 되면서 눈보라가 몰아치는 고약한 날씨로 바뀌었다. 맥킨리에 도착하여 맑기만 하던 날씨가 드디어 맥킨리의 유명한 칼바람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기간이었다. 맥킨리의 경우 전형적으로 4∼5일간은 날씨가 좋고 그 다음의 4∼5일간은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이 반복된다고 하는데 드디어 좋지 않은 날씨의 기간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이날 오후부터는 하루 종일 텐트안에서 갇혀 있는 지긋지긋한 생활이 4일동안 지속되었다. 밤새내린 눈으로 텐트가 눈에 반쯤은 파묻힌 형태가 되어 잠도 제대로 자지못하고 아침에는 겨우 텐트에서 빠져나와 제설작업을 해야 했다. 몇몇 일정에 바쁜 외국대들이 철수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불안감은 점차 더해 갔지만 오히려 이렇게 베이스 캠프에 체류하는 기간이 우리들에게는 고소적응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6월 2일. 드디어 닷새째만에 하늘이 걷히고 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길을 열어준 것이다. 대부분의 외국대들 또한 출발준비를 하였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먼저 출발하는 팀이 없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앞에 가는 팀이 치뤄야할 럿셀의 수고를 누구도 선뜻 나서서 자처하지 않는 탓이다. 몇몇 외국대들이 럿셀을 하기를 기다리다가 우리- 종화형과 필자, 그리고 계암팀 2명.(광선형은 뒷꿈치가 아파 등정을 포기하였다)가 출발한 시간은 12시경. 몇 팀이 앞서 가기는 했지만 아직도 신설위로 제대로 길이 뚫리지 않아 우리들도 상당히 고생을 하며 헤드월 구간을 올라갔다. 16시 30분경 힘겹게 헤드월 상단에 올라서서 데포물품을 회수한 후 캠프 5인 맥킨리 빌리지(Villiage)로 출발하였다. 이 구간은 바람이 많고 경사가 가파른 릿지이기 때문에 눈은 많지 않으나 가파른 경사로 인해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다. 고정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나 아이젠에 이곳 저곳이 찢겨 믿고 의지할 만한 상태는 아니다. 

빌리지(5,200m)에 도착한 시간은 20시. 산소의 부족은 베이스 캠프에 비할바가 아니어서 조금만 몸의 리듬이 깨져도 수영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을 때처럼 호흡이 엉켜 한동안 숨을 가다듬어야 하는 정도이다. 빌리지에는 대구 팔공산악회와 경주 클라이머스 합동대의 대원 2명이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일 정상공격을 한다고 한다. 모든 대원이 도착한 시간은 21시경. 저녁을 먹으며 다음날의 운행계획을 논의하였다.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으니 정상공격은 하루의 휴식을 취한 후 모레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언제 날씨가 나빠질지 모른다. 포레이커봉 저쪽으로는 또다시 구름이 몰려들고 있다. 이번에 성공하지 못하면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어쩌면 등정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종화형에게 내일의 정상공격을 조금스럽게 제안했다. 대구-경주합동대와 함께라는 조건으로 허락이 떨어졌다. 내일이면 정상공격이다. 긴장때문인지 추위때문인지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다 추위로 감기가 들었는지 기침이 자주나온다. 겨우 겨우 몇차례의 짧은 잠에 빠진다. 


6월 3일. 06시 45분에 기상해 주섬주섬 정상공격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해온 속옷으로 갈아입고 복장을 챙긴 후 대구-경주 합동대의 텐트로 갔다. 아침식사를 함께하고 준비를 마친 후 09시 30분 출발. 데날리 패스를 통과하는 동안은 그늘이 져서인지 무척이나 손과 발가락이 시렵다. 나중에 들으니 종화형도 이 곳에서 동상에 걸렸다고 한다. 두 사람과 안자일렌을 하고 등반하였는데 안하던 안자일렌을 하니 몹시 불편스럽고 페이스도 맞지않는다. 데날리 패스를 통과해서는 두사람에게 부탁해 안자일렌을 풀렀다. 그들의 페이스에 맞추자니 내 페이스를 잃을 것 같았고, 비록 페이스는 다르지만 속도는 늦지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상은 정확했다. 그들은 걸음은 빠를지 모르지만 속도에 기복이 심했고 점차 쉬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들과 거의 같은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병태형이 얘기했던 레스트 스텝(Rest Step: 한쪽발이 무게를 견디는 동안 다른 쪽 발은 휴식을 취하면서 단계적으로 전진하는 운행 방식)은 고산에서 특히 유효하였다. 쉬지는 않지만 걸으면서 쉬는 방법이 레스트 스텝인데, 빠르지는 않지만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고 처음과 끝의 운행속도가 거의 일정해 결국엔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힘들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이다. 

빌리지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6,000m대에 이르러 펼쳐지는 넓은 분지를 제외하면 계속 경사가 심한 구간이지만 짐이 없기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6,000m대의 분지 저 편으로 정상의 나이프 릿지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곳까지는 고도 200m에 이르는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야만 한다.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띄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 내린다. 맥킨리 등정을 다짐하며 아침마다 힘겹게 뛰어 오르던 우면산이 생각난다. 등정을 위해 걷고 또 걷던 북한산과 도봉산의 능선도 떠오른다. 그 산길에서 흘렸던 땀방울들이 이제 나를 맥킨리 정상으로 밀어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발끝만을 바라보고 걷던 내게 발앞을 가로막던 능선이 사라지고 정상의 나이프 릿지가 나타났다. 칼날같은 능선위로 몇 사람의 발자욱이 새겨져 있다. 양쪽은 수천미터의 벼랑이다. 이 곳에서 추락하면 죽어도 썩지 않는 얼음덩이가 되리라 생각하며 조심스레 건너갔다. 

더 이상 높은 곳이라고는 하늘 뿐인 곳. 드디어 정상이다! 빌리지를 출발한지 5시간 30분의 힘겨운 사투끝에 드디어 정상에 섰다. 한 휴대폰의 선전처럼 당장 한국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 북미 최고봉 맥킨리 정상입니다!" 

좌우에 헌터봉과 포레이커봉을 이끌고 수많은 알래스카산군 가운데에서도 우뚝 솟은 맥킨리의 정상에 서서 조금은 자연을 닮아가는 나의 모습을 본다. 

나를 보라 

 

 

 

 

w_14.jpg

 

w_18.jpg

 

w_24.jpg

 

w_26.jpg

 

w_33-s.jpg

 

오늘도 나는 世上의 頂点에 서있다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이곳에 서서 

조용히 눈감으면 

어느새 나는 바람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 혼자만의 등정이 아니었다. 다음날 12시간 30분만에 탈진 상태로 돌아온 종화형과 애타게 무전기로 안부를 물어오던 광선형. 그리고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청화산악회 회원들, 와일드 스포츠 클럽, 건강하게 돌아오라던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위험한 길 떠나는 자식을 보며 눈물로 말리시기 보다는 "힘들 때면 두 주먹 꼭 쥐고 이겨내라!"하시던 어머님. 바로 이 모든 사람들의 등정이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1997년 6월 3일 오후 3시 맥킨리 정상에 서 있었습니다. 

 

dbce0063a0455f3e9649b9f895a1ef6a.jpg

 

 

Posted by wasillaoh


[ 금왕 일출산악회 데날리 보고서]

 

2005년도 금왕 일출 산악회 맥킨리원정대 보고서 보기

http://blog.daum.net/leechisang/16255172

2005년 5월에 등반했던 알라스카 맥킨리봉

등반화보를 시간나는대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발대식(삼원정)

대원들 옷에 부착한 파스가 인상적이다. ㅎㅎ

음성군에서 후원을 하였고 음성군기와 음성군특산물을 홍보하기 위하여 로고를 붙인 것이다.

 

 

심현보 대장의 월드사우나에서 패킹작업.

 

박수광 음성군수님 방문

 

출발 전, 히말라야 앞에서

좌부터 최범식(73세, 고문), 이치상, 이병영, 이민환, 안성수, 심현보 대장

 

버스에 오르기 전 무극다리에서

박인석 읍장님(중앙), 정인걸 농협조합장님, 심현보 대장의 형님과 함께

 

인천공항에서 출국준비

 

환송나온 가족들과 함께

 

원정 때마다 행동식을 협찬해 주신 파시코에서 환송현수막을 들고나왔다.

 

무사히 미국 본토 LA에 도착한 후 공항밖에서

 

알라스카 앵커리지 도착 후

 

앵커리지에서 2시간 거리의 와실라 호수산장(오갑복 씨 집)에서 도착 후

등반에관한 미팅을 하고있다.

 

음성군 특산물인 청결고추와 고추장을 오갑복님에게 전달

 

와실라호수

 

도착 바베큐파티

 

 

이 치상 _()_




Posted by wasillaoh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차세대 고산 등반가 최석문(38·노스페이스)이 지난 22일(한국시간) 미국 알래스카 헌터봉(4442m) 북벽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소속팀 노스페이스는 최석문, 문성욱(41·몬츄라), 안종능(39·넬슨) 등 3인으로 구성된 이번 원정대가 지난 19일 정상 공략에 나서 3박4일 간의 사투 끝에 22일 헌터봉 정상에 올랐다고 24일 밝혔다.

원정대는 중간에 캠프를 차리지 않고, 한 번에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 치고 올라가는 알파인 스타일로 정상에 올랐다. 

헌터봉은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봉(6194m)과 포레이커봉(5303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해발고도는 매킨리보다 2000m 가량 낮지만 등반 난이도는 더 높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80도에 가까운 경사도와 1500m 가량 펼쳐진 암벽과 빙벽이 최대 난코스로 정상 부근의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가 등정 성공률이 낮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원정대는 지난달 27일 한국을 떠나 알래스카 프렌치스 루트를 등반하며 현지 적응 훈련을 마치고 5월17일 1차 등반에 나섰다. 

당초 헌터봉 북벽 신루트 개척을 계획했으나 하단벽 4m 높이의 얼음 기둥이 무너지면서 아쉽지만 변형 루트를 이용해 2차 등반을 시도한 끝에 등정에 성공했다. 

노스페이스 산악지원팀 관계자는 "헌터봉은 알래스카 고산 중에서도 등반이 어려운 산으로 1954년 최초 등정 이래 전세계의 많은 원정팀이 도전했지만 정상에 오른 사례가 많지 않다"며 "신루트 개척은 체력적, 정신적 고통이 수반되는 만큼 대원들의 등정 성공과 무사 귀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kyustar@newsis.com

출처:뉴시스











Posted by wasillaoh
TAG 헌터봉




알래스카주 록키산맥에있는 데날리국립공원은 북위 63도 북극에서 322km로 밖에 떨어저 있지 않아 추위가 심하고

백야현상으로 낮이 20시간 등 불규칙한 기상으로 히말라야보다 고소증세가 1000m 이상 빨리 오는 곳입니다.

1913년 미국원정대 허드슨 스턱, 월터 하퍼, 헨리 카슨, 로버트 테이텀에 의해 등정된 이 곳에

한국은 1979년 고상돈, 이일교, 박훈규대원이 등정하였으나 하산 중 고상돈 이일교대원이 사망하였다.

 

나 김홍빈은 1998년 5월 14일에 등정하였습니다.

 

 

김홍빈 대장의 산악이야기 - 매킨리 등반 일지

 

5월 13일

송형근 대원의 비자가 미국 대사관에서 운이 나빠서인지 오늘까지 2번이나 발급이 되질 않는다. 준비를 다 마쳤는데 함께 떠날 수 없게 되어 너무 아쉽다. 새벽 1시 고속버스 편으로 텐트 2동만 서울에서 도착하면 짐 패킹이 마무리 된다.

숙소에는 선, 후배님들이 찾아 와서 격려를 해준다.

 


5월 14일

오전에 지체장애인협회 이재홍 회장님을 방문하고, 재강 형님의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늦지 않게 광주 공항에 도착하여 앵커리지까지 바로 짐을 보내야 하는데 화물이 큰 스키는 김포공항에서 다시 찾아서 보내야 한단다.

 

▲김포 공항에서

 

앵커리지로 가는 비행기를 세 번째 탄다.

사고 이전에는 8,000m 14좌 등반이 나의 꿈이었는데, 91년도 매킨리 단독 등반에서 간단한 식량과 날씨가 등반 전까지는 계속 나쁘다가 도착한 날로부터 너무 좋고, 컨디션도 좋아 쉴 여유도 없이 계속 등반을 하다 보니, 데날리 페이스(5,700m)지점에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그 당시 2주 만에 비자를 받았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1주 늦게 출발해 같이 가기로 했던 팀을 만나지 못하여 결국 단독 등반을 계획하게 되었다. 국내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쌀 식을 조금씩 줄여 등반 중 식량을 빵과 행동 식으로만 준비해도 견딜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쌀 식을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 정말 남의 도움 없이 단독 등반을 하고 싶었다.

 

92년 선, 후배님들이 어렵게 준비하여 매킨리에 재도전하였으나 날씨가 좋지 않고 국내 팀의 사고로 실패를 했다. 나는 손을 더 좋게 고칠 수 있을까 싶어 알래스카 병원을 찾아 사고 당시 담당 의사를 만나고 그 외에 여러 곳을 다녔으나 현재의 손 이상으로는 더 좋게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사고 후 7년, 외로움과 싸웠던 그 곳을 향해 이번엔 혼자가 아닌 둘이서 다시 도전하려고 한다. 설렌 마음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앵커리지 도착 안내 방송이 나온다.

벌써 도착인가! 지금부터 시작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온통 등반에 대한 생각 뿐이다. 14일 09시에 도착하여 대한항공 직원들의 배려로 세관을 통과하여 9시 20분에 로비에 나오니 구영근 대한항공 앵커리지 지점장님과 총영사님이 전화통화가 되었다. 점심 약속을 해서 픽업 나온 오갑복 선배님과 영사관에 가서 식사를 하고 앵커리지(Anchorage) 윈디코너(Windy Corner) 장비점에 들려 와실라로 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와실라(Wasilla)의 윈디코너 장비점에서 장비를 구입하고, 식량 점검을 하며 잔잔한 호숫가에 막영을 하고 첫날을 보낸다. 윈디코너 장비점은 미국에 이민 와서 와실라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오갑복씨가 운영하며 여행이나 등반객 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5월 15일

아침부터 흐리고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와실라에서 탈기트나(Talkeetna)로 이동, 레인저 사무실에 들려 입산 신청을 하니 91년 사고 당시 나를 구조했던 Roger가 반가워한다.

 

올해 새로 구입한 컴퓨터 영상으로 쓰레기 처리, 등반 루트, 크레바스,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숙지한 후, 헤드슨 에어택시(Hudson Air Service)에 들려 짐을 두고 숙소(Road House)에 도착했다. 장기간 날씨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출발해야한다. 휴가철이라서 많은 여행객들이 숙소를 예약하기위해 대기하고 있다. Roger가 퇴근 후 집으로 초대하여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91년 사고 당시 슬라이드 사진 자료들이 많이 있고, 그 중에 한 장을 확대해서 나를 준다고 한다. Roger와 와이프인 Pam은 일요일까지 날씨가 안 좋아서 산으로 못 들어가면 저녁 초대를 하겠다고한다.

 

▲로저 집에 초대를 받아서(로저, 김홍빈, 로저 와이프, 김은주) 

 


5월 16일

비가 내리는데도 탈기트나 시골 마을은 광부의 날 축제로 시끌벅적 분주하다. 오후 늦게까지 비가 내리더니 다행히 햇볕이 나고 경비행기 소리가 몇 번 들리며 헤드슨 항공에서도 비행을 할 수 있다고 연락이 온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도착하니 비가 또 온다.

 

 

하늘이 밝아지면서 비행이 시작되고 초록에 도심을 지나 저 멀리의 만년설의 작은 산들이 점점 커진다. 이름 모를 봉우리들 위를 지나 고대하던 하얀 눈밭에 2번의 착륙 시도 끝에 사푼히 날아 앉는다.

렌딩포인트 의무실! 중간 중간 스쳐 지나가는 지난 기억들이 추위와 함께 가슴 깊이 파고든다.

렌딩포인트(L. P 2,134m)의 터줏대감 앤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깊숙이 눈을 파 평탄 작업을 하여 막영 준비를 하고 눈 위에서 첫 밤을…….

 

▲랜딩포인트

 

 

5월 17일

랜딩포인트에서 12시 30분 출발해 북동 빙하 (2,350m)입구에 18시 도착했다.

아침에 일어나 매킨리 정상을 보니 굴뚝에서 피어나는 두 줄기 연기처럼 눈발이 날리고 날씨는 너무 쾌청하다. 썰매를 달고 스키를 이용해서 내리막을 가니 다른 등반 팀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91년도 등반 때는 스키 바인딩이 부러져 스키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오르막부터는 스키아이젠으로 끼워서 출발을 하는데 오히려 썰매가 스키를 끌어당기고 스키는 전진을 못한다.

또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순간이다. 매킨리에서는 새로 나온 티타늄 스키 아이젠이나, 플라스틱 스키 스킨은 무용지물이 된다. 썰매는 짐이 무거우니 끌어지지 않고 오히려 뒤로 밀린다.

외국팀들은 실로 만든 스키 스킨(씰)을 사용해 스키부츠를 신고 등반을 한다.

 


5월 18일

아침에 날씨가 좋다가 오후부터 화이트 아웃과 함께 눈발이 날린다.

배낭을 메고 무거운 썰매까지 끌며 가파른 급경사면을 스틱도 없이 낑낑대며 발의 힘으로만 오르다 보니 너무 힘들다.

외국팀들은 적은 양으로 스키를 이용해서 2번씩 왕복한다. (C2 2,900m)

 

 

5월 19일

아침부터 눈과 화이트 아웃으로 시계가 흐려서 오후에 데포지 짐을 챙겨 2시간 정도 운행을 하다가 데포 시키고 C2로 하산했다. 눈은 하염없이 내려 텐트주위에 눈을 치워도 끝이 없다.

 


5월 20일

날씨는 계속 나쁘다.

스키를 사용할 수 없으니 필요 없는 스키 짐까지 늘고, 발이 눈에 빠지기 때문에 힘이 더 든다. 다른 사람들은 스키를 이용해 가볍게 오르는데, 그 사람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C3(3,900m)에 도착하여 텐트를 설치해 놓고 어제 데포 시켜 둔 짐을 운반하려 스키를 타고 내려간다. 내려갈 때는 재미있는데 올라올 것이 꿈만 같다.

내려올 때는 크레바스가 양 옆에 있었는데, 데포지 짐을 찾아서 올라오니 눈보라와 화이트 아웃으로 5m 앞을 분간할 수 없다.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설동을 파고 있기로 하고 설동을 한참 파는데 터키팀 남, 여 2명이 안자일렌을 하며 올라오더니 한참 상의한 후 자기들은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도 스키와 썰매를 둔 채 배낭만 메고 C3로 올라가기로 하고 같이 길을 찾아 텐트에 도착하니 탈진 상태다.

 


5월 21일

휴식

날씨는 계속 화이트 아웃, 어제 가지고 오지 못한 데포지 짐을 찾아 올라왔다.

 


5월 22일

09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나 11시 20분 C4로 출발

모터사이클 힐을 지나니 91년도와는 지형이 많이 다르다.

윈디 코너를 지나서 150m의 아슬아슬하게 통과해야하는 크레바스, 4300m의 C4가 생각보다 너무 멀리 있는 것 같고 화이트 아웃이 생기면서 시계가 흐려진다.

매킨리 시티에 도착하여 캠프지를 찾아 텐트를 설치하고 내려오는데 화이트 아웃과 눈이 많이 내려서 앞을 분간할 수 없고 중간 중간 언제 무너질지 모를 크레바스가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다. 특히 이런 구간에서는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안자일렌으로 등반 해야하는데 사고 시 손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등반을 해야 한다.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후배 앞에서 내색할 수도 없고 후배는 빈 썰매를 달고 내려와 하산이 늦어진다.

 

화이트 아웃이란 심한 눈보라와 눈의 난반사로 주변이 온통 하얗게 보이는 현상으로, 화이트 아웃이 되면 극지에서 천지가 모두 백색이 되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고, 발 밑만 보이며 1m 앞부터는 높낮이를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에 넘어지고 헛발을 딛기 일쑤다. 주위의 지형을 분간하기 힘들고, 눈까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면 고글에 눈이 달라 부터서 얼기 때문에 시야가 더 안 좋아진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 다음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캠프사이트를 보니까 살았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조금만 출발을 일찍 하면 이런 고생은 안 하는데…….

 


5월 23일

계속해서 눈과 바람이 불어댄다.

다른 팀들도 텐트 안에서 눈을 털고, 텐트 주위에 눈을 치우고, 버너 피우는 소리 외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C4의 텐트가 잘 견디고 있는지…….

운행 일정도 계획보다 날씨 때문에 늦어져 걱정이 된다.

내일은 C4에 올라가야 되는데 날씨가 도와주길 바랄 뿐이다.

보통 C3 텐트안의 온도는 낮 영하 5도, 밤 영하 10도이다.

 


5월 24일

일어나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은 있지만 시계는 좋다. 랜딩포인트에 경비행기 이, 착륙 소리가 들린다.

11시경 출발했는데, 모터사이클 힐 위는 바람이 시속 50km 정도로 불고, 200m의 급경사에 올라서니 전진이 어려울 정도의 바람이 불며 눈가루가 날려서 2m 앞도 보이질 않고 서 있기조차 힘들다. 30분 정도 완경사를 지나니 급경사가 나타나고 윈디코너에는 시속100Km 이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안자일렌을 하며 엉덩이를 눈에 대고 기어 내려오는 팀, 바위 뒤에 기대어 바람을 피하는 팀, 데포를 시키고 내려가는 팀들이 보인다. 우리는 2시간 정도 기다리기로 하고 김대원을 바위 뒤로 데려와 매트리스 위에 앉아 바람을 피하게 한 후 혹시 몰라서 텐트 칠만한 곳을 찾아보려고 돌아다니는데, 김대원이 잠깐 일어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매트리스를 한 장을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점점 더 높이 날아가 버린다.

김은주 대원이 떨고 있으니까 내려가는 팀들이 같이 내려가자고 한다, 하지만 내려가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다

윈디코너를 지나 150m의 크레바스만 잘 지나면 설원이고 캠프 설치는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둘이 윈디코너를 넘기로 하고 5m의 줄로 안자일렌을 하면서 몸을 벽 쪽에 바싹 부치고 발로만 버티면서 무사히 우측의 맞바람을 맞으면서 크레바스를 넘어서니 바람은 심하지 않다. 뒤에 2명이 우리 뒤를 따라온다.

역시 지명다운 바람이 불어 댄다. 윈디코너다.

 

▲윈디코너 강한 바람에 돌맹이가 날아 다닌다 

 

화이트 아웃은 신경 쓰지 않은 채 C4의 캠프지에 다다르니 살았다는 안도의 심정은 잠깐이고 텐트가 보이지를 않는다. 상황을 보니 텐트가 바람에 찌그러지니까 철수를 한것 같아서 레인저 사무실에 가서 물으니 걷어 놓았다고 한다. 눈 블럭을 텐트 높이의 반 정도 쌓아 놓아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다. 정상 갈 식량과 장비들이 텐트 안에 있었는데, 바람 때문에 3인용 텐트를 다시 쳐야했다. 눈보라 때문에 텐트 안에 눈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오고 텐트 문만 열면 눈가루 때문에 앞이 안보일 정도다. 간단히 할 수 있는 신발 끈을 묶는 일이나 텐트, 침낭 등의 지퍼 올리는 일이 너무 힘들기만 하다. 특히 날씨가 워낙 추워 장갑을 벗으면 손에 온도가 떨어져 손목부분에 혈액 순환이 안 되기 때문에 동상 위험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소변을 봐 주어야 한다. 하루 종일 소변을 한 번 봤는데, 그것도 외국팀에게 부탁해서 볼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꺼리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 이것은 앞으로 등반 중 해결 해야 할 과제다.

아……. 텐트 안은 천국이다. 윈디코너의 바람을 생각하면…….

 


5월 25일

텐트 자리를 옮기는 게 급선무다.

아침을 먹자마자 캠프사이트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3군데 중 제일 괜찮은 장소를 찾아 표식 기를 꽂고 오후 4시까지 텐트를 쳤다. 짐 정리를 하고, 내 키보다 높게 스노우 블록을 쌓아 눈으로 바람구멍을 막아 텐트를 다시 설치하니 오늘은 더 좋은 천국이다.

 

▲스노우 블럭을 텐트보다 높이 쌓아야 바람에 견딜 수 있다.


밤 11시가 지나 볼펜이 안 나오면 4초 동안 입에 넣고 있다가 불면서 일지를 기록하는데 왼손이 너무 시리다. 텐트 안이 영하 4도이고 성에가 차기 시작한다. 헤드 웰 위에는 바람소리가 전투 비행기 소리처럼 들린다. 텐트 밖에도 바람이 심해 눈가루 때문에 밖을 나갈 수도 없다.

이 와중에 김대원은 코를 골고 잘도 잔다.

앞으로 4~5일 후에나 날씨가 좋아 진다는데, 11시 30분이 지나니까 저녁 노을이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바람아 멈추어 다오.

 


5월 26일

날씨가 안 좋은데 30명 정도가 헤드웰쪽으로 등반하고 레스큐 걸리에 3명이 등반을 한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포레이커봉, 헨터봉, 눈밭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레인저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사람이 달려오더니 레스큐 걸리에 한 사람이 추락하여 크레바스에 빠졌다고 한다. 정말 보니까 2명 밖에 안 보인다. 구조대가 출동을 했는데, 날씨는 너무 춥고 변덕이 심하다. 오후엔 2번이나 날씨가 급변해서, 주위에 구경을 갈때에도 크레바스가 많아 안자일렌을 하고 가야한다.

10시경 추락한 사람은 갈비뼈가 3개 부러지고 하이포서미아(저체온)에 걸렸지만 구조가 되었는데 자원봉사 구조대원 1명이 구조하러 갔다가 크레바스 빠져 죽었다고 한다.

 

 

5월 27일

어제 저녁부터 정상 갈 준비를 해 놓고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리는데 아침부터 폭풍이 불기 시작하여 3명이 먼저 등반을 하다가 다시 내려오고 캠프지 사람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89년 동계 에베레스트 바람보다 더 하다.

레인저 사무실에 들려 와실라에 전화를 하고 날씨를 물으니, 언제쯤 좋아 지는지, 얼마나 오래갈지 모른단다.

인천대 팀이 어제 늦게 올라왔다고 텐트를 방문했다.

 


5월 28일

오후에 날씨가 좋아져서 헤드 웰(4,800m) 얼음 밑까지 고소 적응차 다녀오는데 오는데 날씨가 너무 좋다.

머리는 약간 아프다. 내일은 빌리지(5,200m)까지 가기로 하고 3일치 식량, 간식 등 장비를 챙겨놓았다.

 


5월 29일

(시티 4,300m→(3시간 30분)헤드웰 →(3시간)빌리지 5,200m)

처음으로 아침부터 가장 좋은 날씨다. 바람, 구름 한 점 없는데다가 걷다 보니 땀이 다 난다.

200m 얼음 구간을 통과하는데 가기 전에는 걱정했지만 겨울철에 빙벽훈련을 많이 했던 것으로 자신감을 갖고 하니까 오히려 재미있다.

 

 

KARL이라는 앵커리지 친구가 쥬마(등강기)를 통과해 주어서 30명 정도가 줄을 서서 올라 헤드웰에 도착하니 여러 팀이 쉬고 있다. KARL과 물, 간식을 같이 나누어 먹고, 사진을 찍은 후 급경사인 릿지를 넘으니 시티가 보인다. 칼날 릿지를 지나 빌리지에 도착하니 약간의 고소증세가 있다.

 

▲헤드

 

아스피린 1알을 먹고 2시간에 걸쳐서 바닥에 눈을 깎고 다듬어 텐트를 설치한 후 바람 때문에 스노우 블럭을 텐트 높이로 쌓고 나니 인천대 팀이 도착한다.

 


5월 30일

날씨가 나빠서 빌리지(5,200m)에서 대기했다.

눈보라와 화이트 아웃으로 밖을 나갈 수가 없었는데, 오후 늦게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오늘도 몇 팀이 오후 늦게 캠프지에 도착한다.

컨디션은 하루 쉬어서 아주 좋다.

 


5월 31일

07 시경 기상하여 정상에 갈 준비를 하고 09시 30분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바람이 불어 매우 추운데, 전년에 비해 바람이 많이 불어 눈이 쌓이지를 않아 경사도가 50~60도 이상으로 너무 심해 사면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밸런스 잡기가 어렵다. 데날리 페이스 11시 15분에 도착했다.

 

점점 잊혀져 이곳에서 사고 당했다는 기억마저도 희미해진 상태다.

이곳에서 사고가 났었지! 가끔씩 난 평생 운동화 끈도 매지 못하고 손가락 없이 살아가야하는가 하고 비관도 해보지만 아직도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서 희망을 갖고 "꼭" 정상에 오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정상을 향하여 

 

데날리 페이스 우측에 풍향계가 있고, 얼마를 오르니 정상이 보인다. 바람이 세차지고, 손이 시리기 시작한다.

풋볼 그라운드에서 배낭을 두고 카메라와 정상에서 필요한 것들만 챙기고 출발했다.

300m의 50도 정도의 경사도를 지나 200m의 칼날 릿지를 지나니 북미의 최고봉 정상이다.

 

 





 

 

결국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진 몇 장만 찍고 바로 하산 준비를 했다.

예상 시간보다 35분 정상에 빨리 올랐다. 날씨가 안 좋아질 기미라고 말한지 5분도 안되었는데 화이트 아웃이 생기고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릿지에서는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엉켜 우왕좌왕하는데, 만약에 추락하면 4,000m…….

낭떠러지 반대편으로 몸을 바싹 붙여서 신속하게 릿지를 통과해 하산을 하는데 앞이 보이질 않아 사람 소리를 듣고 표식 기를 찾으면서 내려갔다. 가다가 길을 잃으면 한참을 기다렸다가 다시 찾아서 내려가는 과정으로 풋볼 그라운드에서 배낭을 찾아 내려오니 시야가 조금씩 좋아진다. 이제는 다리가 휘청거린다.

 

▲베이스 캠프(4,200m) 구조대 사무실 

 

캠프지에 도착하니 20시 15분이다. 내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15분 오버가 되었다.

날씨만 좋았으면 더 정확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무사히 정상을 등정해서 정말 기쁘다.

등반 기간 동안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내심 걱정도 많이 했는데,

이틀 날씨가 좋아서 그 중 하루를 매킨리의 신이 정상의 길을 열어 준 것 같다.

올해는 많은 팀들이 정상을 가지 못했다

 


6월 1일

날씨가 계속 화이트 아웃이다.

시티까지 하산하기로 하고 70도가 넘는 얼음 구간을 지나니 화이트 아웃으로 아래가 보이질 않는다.

200m의 청빙 구간을 줄이 팽팽한 이유로 하강기 사용은 못하고 카라비너를 통과하여 겁도 없이 무사히 하산을 했다.

캠프에 도착하여 레인저 사무실에 가서 정상 등정 소식을 전하니 축하를 해준다.

 

 


6월 2~4일

매킨리 시티 텐트를 철수하고, 윈디코너를 지나 랜딩포인트에 도착하여 애니한테 등정 축하를 받고 헤드슨 에어택시로

탈키트나에 도착했다.

 

▲경비행기 탈기트나에서 렌딩 포인트 왕복 

 

토마토 스프와 빵으로 배를 채웠는데도 잠이 오질 않아 인천 팀들과 늦게까지 등반 이야기를 나누었다.

 


6월 5일

임대용 총영사, 박규옥 영사님으로부터 등반 전에도(5월 14일)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오늘도 점심 초대를 받았다.

 

▲알래스카 한국영사관 직원분들과 함께

 

 

앵커리지 시내를 관광하는데 여기는 IMF에 걸맞은 중고 의류나 속옷, 잡화 등 가게들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축구화=2$, 반바지=2$ 2EA(하나는 입던 것 주고 바꾸었다), 등산용 물 컵 50센트.

이곳은 우리나라 재활용품처럼 형식적이지 않으면서 값도 싸고 치수도 일일이 표시되어 있다.

 

 

6월 6일

프로비던스 병원에 가서 2시간의 수소문 끝에 91년도에 간호해준 SCOTT를 만났다. 다들 직장을 옮기고 혼자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에 공항에서 프레드 힐만, 91년 매킨리 사고 당시 자원봉사로 영어를 가르쳐준 영어 선생님을 만서 너무 반가웠다. 등반 전에 연락을 취했을때는 연락이 닿지 않았었던터라 더욱 반가웠다.

 

▲김홍빈, 오갑복, 프레드 힐만(영어 선생님), 오갑복씨 아내(형수님)

 


6월 7일

새벽 04시 20분 앵커리지 공항에서 출발해 6월 8일 아침 06시 10분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한승 대한항공 광주지점장님의 배려로 광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직원들이 나와서 격려와 축하를 해주었다. 10시 광주공항에 도착하니 임성욱 광주광역시 장애인종합복지관장님 그리고 임형칠 대산연기술분과 이사, 아내, 현숙씨, 후배들, KBC 방송국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너무들 반갑다.

등반 중 힘이 들면 에베레스트 등반을 상상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힘을 달라고 하며 걸어가면서 빌었다.

대한민국 450만 장애인들과 산악인들의 힘으로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본 내용은 김홍빈 대장의 블로그에서 발취 하였습니다.]
http://blog.naver.com/prologue/PrologueList.nhn?blogId=treksta051














Posted by wasillaoh


1996년도 설월 맥킨리원정대 보고서

Mt. Mckinley

 

 

■ 맥킨리

맥킨리는 알래스카 중남부에 위치한 데날리 국립공원내에 해발 6,194M로 북미 최고봉이다.

알래스카 중앙 가까이 사는 원주민들은 이 산을 Denali라 불렀다. 데날리라는 이름은 Athabscan 인디언말로 "The high one"이란 뜻이다. 맥킨리라는 이름은 1897년 미국 24대 대통령 William Mckinley의 이름을 붙혀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다.

등반 루트로는 1913년 H.Stuck등 4명의 알래스카인이 초등한 바 있는 Muldrow빙하와 오늘날 연간 800명 이상의 등반가중 절반 이상이 오르는 웨스트버트레스 그리고 웨스트립, 캐신릿지가 있다. 이밖에 사우스버트레스 고전루트와 남서벽루트, 아메리칸다이렉트루트, 스콧-헤스턴루트, 그리삭루트, 슬로박루트등 고난도의 루트들이 남벽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맥킨리 등반의 어려움은 이산이 세계에서 가장 추운 산이라는 것이다. 북위 63도에 위치한 정상은 북극권과 불과 322km 에 위치하고 봄과 여름의 등반 시즌동안 -40℃의 기온과 130km/hr 의 바람을 동반한다.

또한, 극지방 특유의 대기 희박성으로 생리적 반응이 같은 높이의 안데스나 히말라야보다 600~900m 높게 나타나 고산병이 걸릴 의심이 높다는 등이다.

 

■ 원정등반 개요

1. 원정대명 : '96설월맥킨리 원정대(‘96 Seol Wull Mckinley Expedition)

2. 대 상 지 : 북미 알래스카주 맥킨리봉 (6,194m) (북위 63° 04, 서경 151° 00)

3. 등반기간 : 1996. 4. 22 ~ 5. 13 (22일간)

4. 등반루투 : 웨스트버트레스

5. 등반방식 : 알파인스타일

6. 등반결과 : 데날리패스 하단 5,400m 지점까지 진출후 기상악화 및 대원 저체온증 증상으로 하산

7. 대 원

  - 김 회 율 (Kim, Heoy-Youl)

  -                    일생

  - 강원도 속초시 

  - '93 키나발루 등반

  - '94 북알프스 등반

  - 설악산악연맹 자문위원

 

 

  - 차 설 광 (Cha, Seol-Gwang)

  -                   일생

  - 전남 강진군 

  - '92 한국등산학교 동계반 수료

  - '94 북알프스 등반

  - 금릉산악회 소속

 

■ 등반일지

< ‘96. 4. 22 한국시간 > 출국

어제와 그제, 이틀 동안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19시10분 서울발 뉴욕행 항공기에 몸을 싣자마자 회율형은 잠에 빠졌다. 사실 나도 피곤함이 밀려왔다. 국내에서 식량과 장비를 준비하러 동대문과 남대문을 두번씩이나 발걸음을 하며 돌아다닌 결과가 이렇게 피곤함으로 다가온것 같다. 출발하기에 앞서 회장님과 사무실에 전화를 했다. 옆 공중전화 박스에서도 회율형은 30분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것을보니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은지... 아마 걱정하고 계신분들이 많으신 모양이다.

 

<4. 22 현지시간> 앵커리지, 와실라도착

이곳 시간으로 오전 8시30분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아 간단히 입국신고를 마치고 세관검사장으로 갔으나 맥킨리 등반 때문에 왔다고 하니 물품검사를 하지 않고 곧바로 통과시킨다. 공항 대합실로 나가니 와실라에 거주 하시는 오갑복씨가 마중을 나와 그의 차편으로 앵커리지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동양식품에 들려 주식으로 사용할 쌀과 떡국 그리고 부식을 사서 차에 싣고 인근에 있는 한식집에 들려 점심을 마친후 오후 1시30분 와실라로 출발 2시30분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있는데 산악회 문회장님이 숙소로 안부 전화를 해 주셨다. 회장님께서도 걱정이 많이 되신 모양이다. 기대에 어긋나지 말아야 할텐데...

 

<4. 23. 흐림> 와실라 장비,식량준비

눈을 비비며 일어나 시계를 보니 7시30분이다. 머리는 무겁고 자꾸 졸음이 쏟아진다. 이곳의 시차적응이 안된 모양이다. 8시에 맛수리조트에서 인근에 있는 병원을 돌아 약 3키로미터의 조깅을 마치고 샤워를 했다.

회율형은 머리가 맑아진 모양이다. 아침밥을 지어먹고 10시30분 윈디코너 장비점으로 향했다. 어제 미쳐 구입하지 못한 장비와 식량을 준비하고 2시에 오갑복씨가 경영하는 식당에서 점심을 마치고 3시30분쯤 숙소에 돌아와 최종 장비 점검을 마쳤다. 내일 아침이면 탈키트나로 떠난다. 기상이 좋아야 비행기가 뜰텐데...

 

<4. 24. 흐림> 렌딩포인트(2,200m) 도착

와실라를 출발하여 탈키트나에 도착하니 11시30분이다. 레인져 사무실에 들려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허드슨 항공사에 들려 항공기편 예약과 무전기,연료구입을 하고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마친후 다시 항공사에 들렸다. 허드슨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큰아들인 제이허드슨이 우리를 반겼다. 아들인 제이허드슨은 지금은 기상이 좋지 않으니 기다리라고 한다. 우리는 허드슨사무실과 정비공장 그리고 인근 가계에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떼우다 다시 항공사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허드슨 할아버지가 보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간의 등반가들이 남긴 보고서를 통하여 허드슨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니 무척 기쁜 모양이다. 잠시후 아들을 불러 지금 출발 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여 우리는 짐과 몸을 비행기에 실을 수 있었다. 기상이 좋으면 30분정도 소요될 거리인데 구름이 많이 끼고 바람이 거세어 몇차례 선회한후 밤 10시에 렌딩포인트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이제 렌딩포인트에 회율형과 나, 단 둘 뿐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먼저 들어왔던 미국대가 남기고 간 캠프장이 보인다. 밤 11시반이 넘어서야 탠트와 짐 정리를 마치고 저녁은 그냥 건너 뛰기로 하고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 랜딩포인트

 

<4. 25. 맑은후 흐림> 운행중지

7시에 일어나 밖을 보니 밤새 신설이 덮혀 있었으나 날씨는 좋았다. 아침을 떡국으로 마치고 출발준비를 하려고 하였으나 회율형이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오늘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물자 한다. 회율형은 식사를 마치고 곧장 잠에 빠져들고 나는 쉬는 동안 내일아침 일찍 출발 할 수 있도록 썰매끈을 고정시키고 대나무에 표지기도 달았다.

11시쯤에는 남동카힐트나빙하 입구까지 루트정찰을 나갔다. 약 1키로쯤 되는 거리인데 생각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직 스키운행이 몸에 익숙치 않은것 같다. 캠프로 돌아오니 회율형이 적정되는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 곧장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떼우고 잠에 빠져들었다. 인근에 있는 헌터봉에서는 어제밤부터 속 눈사태의 굉음이 들려온다. 문득 깨어 시계를 보니 오후 6시다. 회율형이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과 곰탕으로 배를 채우고 내일 일찍 출발 할 수 있도록 짐정리를 하였다. 저녁 9시인데도 밖은 훤하다.

탠트안의 온도가 영하 4도를 가르킨다. 침낭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해본다. 내일 아침 날씨가 좋아지길 기대하면서...

 

<4. 26. 눈> 남동빙하 입구 진출

오늘은 어떻게든 출발하려고 일찍 일어나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다. 아침을 먹고 기다리다 출발하려고 짐을 챙겼다. 12시 출발이다. 어제 정찰 다녀온 루트를 따라 전진하였으나 화이트아웃 현상 때문에 주위의지형 지물이 전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나침반과 지도를 보며 감각적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처음으로 끌어보는 썰매는 자꾸 뒤집어지고 마음대로 따라와 주질 않는다. 1시간정도 지나니 약 100미터앞에 희미하게 크레바스가 보인다. 마음은 긴장되고 우리는 서서히 전진한다. 뒤에 따라오던 회율형이 "야 저기 크레바스가 아니라 텐트자리다" 하며 소릴 지른다. 멈춰서서 살펴보니 미국대가 남기고 간 탠트 자리다.

약 1.5 킬로미터 정도 이동한것 같다. 오늘은 이곳에서 머물기로 하고 오후 3시 탠트속에서 짐을 풀고 나서 간단히 빵으로 허기를 채우고 잠에 빠져들었다. 저녁 7시에 일어나 알파미로 저녁을 마치고 오늘은 양치질도 한다. 밤11시, 아직도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4. 27. 눈> 북동빙하 입구 도착

오늘은 북동빙하 입구까지 가야할텐데 생각하면서 11시에 출발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눈이 내려 화이트 아웃이 계속되어 여간 고욕이다.

1키로쯤 지났을까 주위에는 온통 크레바스가 나타난다. 전혀 지형이 분간이 안되 스키폴로 확인해가며 천천히 전진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2시30분 잠시쉬며 빵 1개와 곶감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출발하려하니 멀리 능선위에 시커먼 물체가 보인다. 거리상으로 약 3키로미터쯤 되는것 같다. 멈춰서서 계속 지켜보니 사람이다.

3일만에 멀리서나마 사람을 보니 무척 반갑다. 그곳을 향하여 두시간정도 전진을 하니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미국대가 캠프를 치고 우리를 반기며 커피를 권한다. 현재 위치를 물어보니 북동빙하 입구라 한다. 우리는 이곳이 동빙하 입구인줄 알았는데... 아뭏튼 오늘 운행은 이곳에서 끝이다.

 ▲ 2,900m 캠프지로 이동중

 

<4. 28. 눈 후 맑음> 2,900미터 진출

날씨가 변덕스럽다. 아침에 좋다가 또 다시 흐려진다. 11시, 엘 일행이 이끄는 4인조 미국팀과 같이 출발하여 크레바스 지대를 지나 계속 전진한다. 어느나라 팀인지 모르지만 2인조팀이 우리를 따라잡으며 미국대를 앞서 지나간다. 썰매에 짐은 우리보다 적었으며 그 속도는 대단히 빠르다. 오후 7시가 되서야 2,900미터 지점에 이르니 우리를 앞지른 팀을 만날 수 있었다. 엘과 마이클 일행은 이곳에 짐을 데포시키고 어젯밤 묵었던 곳으로 내려가고 우리는 이곳에 눈벽을 쌓고 탠트를 치는데 무려 두시간이 넘게 걸려 비로서 아늑한 잠자리를 마련 하였다. 우리는 버너를 피워 밤 11시가 넘도록 젖은 양말과 신발을 말려야 했다.

 

<4. 29. 눈> 모터싸이클힐 3,240m지점 짐 데포

사람 소리에 일어나보니 탠트안은 온통 하얗게 얼어있고 밖에는 2인조팀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는 모터싸이클힐 아래에 일부 식량을 데포 시키기로 하고 출발한다. 오전에는 날씨가 좋더니만 우리가 출발하니 이내 눈이 내린다. 오후 4시경 카힐트나패스 아래에 도착하여 미숫가루 한컵으로 점심을 떼우고 다시 출발한다.

출발한지 여섯시간이 지나서야 3,240미터 지점에 이르러 아침에 출발한 팀과 또다른 팀을 만날 수 있었다.

'96시즌 첫 번째 팀이다. 영국인 두명과 미국인 1명으로 이뤄진 합동대다. 아침에 먼저 출발한 팀은 프랑스 팀이었다.

우리는 식량을 데포시키고 다시 하산을 시작한다. 스키는 신발에서 자꾸 벗겨져 아예 썰매에 싣고 내려간다.

신설이 쌓여 무릎까지 빠져든다. 눈속을 헤메며 1시간쯤 내려오니 희미하게 탠트가 보인다. 우리탠트는 아닌데 누가 벌써 올라와 쉬고 있다. 그들의 탠트 아래쪽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밖에 사람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어제 내려갔던 엘팀이 올라온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옆에 있는팀은 어느팀이냐고 묻자 일본팀이라한다.

스키 2조에 썰피 2조를 보니 4인조 팀인것 같다. 탠트안에 돌아와 젖은 양말을 말리고 나니 밤10시다. 밖에는 계속 눈이 내린다. 내일 아침까지 내릴 기새다.

 

 

▲ 모터싸이클힐을 향하여

 

<4. 30. 흐린후 눈> 모터싸이클힐 3,300m

밖을 보니 일본대는 벌써 능선을 올라서고 있었고 옆 탠트에서는 엘이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있다. 오전 11시 짐을 챙겨 출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엘이 다가와 회율형의 짐을 챙겨준다. 엘과는 내일 만나기로 하고출발한다. 밤새 눈은 내렸으나 크러스트가 잘되어 스키는 빠지지않아 운행에 큰 지장은 없다. 카힐트나패스에 이르니 일본대가 보인다. 일본대가 계속 오르는것을 보면서 빵과 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출발한다.

한시간쯤 지나서야 일본대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오후 다섯시 어제 데포해둔 장소에 이르러 설벽을 쌓고 탠트를 친다. 이곳 3,300미터에서 아래를 보니 카힐트나 빙하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사진을 찍으려고 셨터를 누르니 카메라가 얼어 작동되지 않는다. 건전지를 새로 갈아 끼우고 우모복속에 카메라를 넣어 잠시후 작동해 보니 그제서야 작동이 된다. 배경사진 몇 컷을 찍고 탠트안에 돌아와보니 회율형이 조그만 손거울을 주면서 얼굴을 보라고 한다. 거울속에 다른사람이 보인다. 얼굴이 시커멓게 타서 엉망이다. 차단지수 42 썬크림을 사용하였는데도 얼굴이 시커멓다. 오늘은 밤이 늦도록 동,화상연고를 얼굴에 바르고 맛사지를 하였다.

 

 

▲ 모터싸이클힐 아래에서

 

<5. 1. 맑음> 윈디코너 식량데포

오전 8시쯤 일본대는 모터싸이클힐을 오르고 있다. 오늘부터는 스키운행은 중지하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10시가 넘어서야 출발한다. 약1시간에 거쳐 모터싸이클힐을 올라넘고 나니 허기가 진다. 아침저녁은 그럭저럭 떼우는데 점심은 물과 빵 1조각이니 항상 허기가 질 수 밖에 없는것 같다. 오르는 곳곳은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고 앞서가던 일본대가 빠진 히든크레바스는 우리의 몸을 오싹하게 한다. 눈이 약간 꺼진 곳은 히든 크레바스다.

그곳을 이리저리 곡예하듯 통과하고 나니 일본대가 앞에 보인다. 윈디코너를 돌아 당초 예상했던 지점에 이르러 식량을 데포시키고 우리는 쉴새없이 내려왔다. 일본대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탠트에 이르니 그제서야 엘팀도 올라왔다. 우리옆 탠트에는 뉴질랜드 팀이 들어와 있었고 곧이어 2인조 캐나다 혼성팀 4인조 미국팀등 속속들이 올라온다. 엘팀은 짐만 데포시키고 곧바로 내려?다. 오늘은 여유있게 발도 닦고 하며시간을 보낸다.

 

 

▲ 모터싸이클힐 아래 캠프(카힐트나 빙하가 구름에 덮혀있다)

 

<5. 2. 맑음> 운행중지

아침부터 바람이 몹시 불어댄다. 옆 탠트에서는 출발준비를 서두르고 있지만 우리는 침낭속에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다. 그렇게 30분쯤 흘렀을까 아침준비를 하려는데 회율형이 오늘은 쉬자고 한다. 바람은불어대지만 날씨는 맑기 때문에 어떻게든 출발하려고 설득하였지만 막무가내가다. 이렇게 좋은날은 맥킨리에서 드물지 않는가. 우리보다 2~3일 늦게 들어온 팀도 다들 올라가는데 이렇게 앉아만 있으려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루 종일 별별 생각을 해가며 시간을 보내지만 지루하기만 하다.

 

 

▲맥킨리시티 캠프

 

<5. 3. 흐림> 맥킨리시티(4,300m) 도착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9시30분 출발이다. 모터싸이클힐을 오르는 구간은 여간 힘들다. 1시간30분이 소요되었다. 윈디코너에 이르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회율형과 안자일랜을 계속 유지하면서 윈디코너 크레바스지대를 통과하고 나니 마음이 놓인다. 엊그제 데포해둔 곳에 도착하여 식량을 확인하니 식량주머니가 강풍에 찢어져 여기저기 알파미가 나뒹굴고 있다. 다시 정리를 하여 얼음덩이로 눌러놓고 맥킨리 시티로 향한다.

시티로 오르는 구간 역시 힘들다. 크레바스 지대를 지나 시티에 다다르니 제이미와 발버라가 시티에 짐을 데포시키고 내려간다. 시티에 이르니 7개팀이 얼음벽을 쌓아 탠트를 치고 그중 4팀은 웨스트버트레스를 오르다

기상이 좋지 않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우리는 약 3시간에 거쳐 지금까지와는 다른 튼튼한 얼음벽을 쌓아 탠트를 치고나니 주위의 모든 팀들이 "베리굿" "나이스"를 외쳐대며 우리 캠프 사진을 찍어댄다.

기분은 나쁘지 않았으나 3시간에 거친 중노동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고소 초기증세가 나타난 모양이다.

저녁을 먹고 기독의원 김원장이 지어준 치료약을 먹었으나 고소에서는 별 효과를 내지 못한것 같다. 어떻게든 버텨보기로 하고 잠을 청해본다.

 

<5. 4. 맑음> 윈디코너 식량 회수

우리나라 날짜는 오늘이 5월5일이다. 어젯밤 꿈속에 애들 모습이 떠 올랐는데 집을 떠나온지 15일째다.

'92한국등산학교 입교때 8일간, '94북알프스 등반때 7일간 결혼 후 이렇게 긴 시간동안 집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오늘은 어린이 날인데 작은 녀석은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큰녀석은 "놀러가자" "뭐 사달라" 하면서 지네 엄마한테 조를텐데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지금 생각이면 다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미 정상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5월1일 데포시켜둔 윈디코너로 식량을 회수하러 출발한다. 어젯밤 눈이 내려 발자욱이 보이지 않는다. 윈디코너에 이르니 12시다.

식량을 배낭속에 담아넣고 일어서니 힘도 없고 몸이 무겁다. 50미터쯤 갔을까 갑자기 뒤쪽에서 "헉" 하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픽켈을 눈속에 박고 잠시후 뒤를 돌아보니 회율형이 히든크레바스에 가슴까지 빠져있다.

힘껏 잡아당겨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하여 몇 발자국 갔을까 이번에는 내가 크레바스에 빠졌다. 순간 왼팔을 벌리고 오른손에 쥐고 있던 픽켈로 겨우 탈출하고 나서 크레바스 속을 들여다보니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간담이 써늘해진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크레바스 지대를 빠져나와 2시에 탠트로 돌아왔다. 온몸에 힘이 없고 그냥 주저 앉고 싶다.

그러나 할 일이 너무 많다. 아침 출발전에 말려둔 침낭이며 장비를 다시 모아야 하고 가져온 식량을 다시 분류 하여야 한다. 오후 4시가 넘어서야 탠트안에 들어와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밥을 먹고 그 자리에 누워버렸다.

지금 웨스트버트레스에는 6개팀이 오르고 있다. 두시간전부터 오르고들 있지만 아직도 그 자리다.

내일은 우리가 올라야 할 길인데 걱정이 앞선다. 저녁7시 밖에 사람소리에 밖에 나가보니 오후에 올라갔던 일본대가 돌아왔다. 맥킨리 빌리지에 식량을 데포시킬 계획이었으나 바람이 너무 강해 그냥 내려왔단다. 밤10시가 지날 때 까지 올라갔던 팀들이 속속 내려오고 있다. 이곳은 북극권에 가깝기 때문에 캄캄한 밤은 거의 없다.

자정까지도 밖은 훤하다. 헤드랜턴이나 후렛쉬가 필요 없고 캄캄해서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단지 순간순간 불어대는 눈보라가 크레바스를 덮어버리고 길을 없애버린다. 오늘 올라온다던 엘 일행은 올라오질 않는다.

아마 윈디코너에 식량을 데포시키고 내려간 모양이다.

 

<5. 5. 맑음> 헤드월 식량데포

어젯밤부터 새벽까지 불어대던 바람은 아침에야 조금 누그러진듯 하다. 탠트가 찢어지지나 않을까 뜬눈으로 밤을 지새던 밤이 악몽과도 같다. 우리는 이곳 맥킨리의 바람을 어젯밤 제대로 체험한것 같다. 앞으로 남은 기간에도 이런날들이 많아질 듯 하다. 11시가 되도록 밖은 조용하다. 모두들 어젯밤 잠을 설친 모양이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어젯밤 내려왔던 팀들이 다시 오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밤새 눈보라로 길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뒤따르기로 하고 빌리지에 데포시킬 식량을 꾸렸다. 오후 1시가 되어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하는수 없이 우리가 선두에 나서기로 했다. 5,000미터까지 고도차 700미터를 오르는데 무려 5시간이나 걸렸다. 두통이 심해 진통제를 먹었으나 별 효과가 없다. 당초 빌리지에 데포시킬 식량을 헤드월에 데포시킬려고 설동을 파려하니 옆에 조그마한 구멍이 보인다. 다가가서 보니 설동이다. 입구는 좁은데 들어가서 보니 세사람은 지낼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다. 우리는 그곳에 식량을 두고 시티로 향했다. 내려오는 시간만도 두시간이나 걸렸다.

내일은 무게를 줄이기 위하여 탠트를 두고 올라야겠다. 짐이 너무 무거워 설동에서 3일밤을 지새울 계획이다.

 

 

▲헤드월을 향하여 오르는 빙벽구간

 

<5. 6. 흐림> 헤드월 도착

오전 10시. 탠트는 그대로 두고 침낭과 우모복 그리고 나머지 식량을 지고 헤드월로 향한다. 어제 올랐던 길인지 오늘은 조금 쉽게 오른다. 고정자일이 있는곳 까지 두시간이 걸리고 빙벽구간에 주마로 오르다보니독일팀이 바로 뒤를 따라 오르고 있다. 천천히 오르다보니 어느새 헤드월이다. 어제 짐을 데포해둔 설동에 들어가니 온몸이 써늘해진다. 젖은 양말과 신발을 말리려고 하니 발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가 싶더니 금새발가락이 얼어 움직이지 않는다. 발을 맛사지하고 나닌 조금 풀리는듯 하다가 금새 다시 얼어버린다.

양말을 갈아신고 설동에서의 첫날밤을 지새운다.

 

 

▲ 헤드월 설동안에서

 

<5. 7. 눈>맥킨리빌리지(5,300m) 도착

밤새 추워서 한잠을 자지 못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사람은 이렇게 얼어 죽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우다보니 아침이다. 설동안의 온도는 영하 30도다. 고소 비빔밥으로 억지로 아침을 해결하고 빌리지로향한다. 웨스트버트레스 구간은 좁은 칼날같은 구간으로 발을 잘못 디디면 1,000미터 아래 맥킨리시티로 떨어진다. 11시에 출발하여 오후 2시30분에 빌리지에 도착하였다.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아침에 약을 먹었으나 별 효과가 없다. 아스피린이라도 가져올걸 하는 후회가 생긴다. 오후 4시 설동안에 거쳐를 정하고 저녁을 간단히 먹고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5. 8 눈, 바람> 정상

오늘은 어떻게든 정상으로 가야한다. 휘발유도 하루분밖에 남아있지 않고 설동에서 이틀을 보내고 나니 고소증세도 보이고 몸도 말이 아니다.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 밖을 보니 바람이 몹시 불어댄다. 밖의 온도는영하40도 체감온도는 영하60도는 넘은것 같다.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으니 일본팀은 벌써 데날리패스를 향해 오르고 있다. 우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출발을 하려하니 손발이 꽁꽁 얼어붙어 움직여지지 않는다. 데날리패스 중간쯤 갔을까 회율형이 도저히 못가겠다고 하며 혼자 갔다 오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안자일랜을 풀어 자일을 회율형에게 주고 혼자 데날리패스를 향해 오른다. 몸을 날려 버릴듯한 바람과 뼛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나의 마음을 자꾸 산 아래로 끌여 내린다. 뒤들 돌아보니 회율형은 설동입구에 거의 도착하고 있다. 다시 이를 악물고 정상을 향하지만 나의 걸음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되돌아오게 한다. 강풍과 추위속에 하는 수 없이 설동으로 되돌아오니 회율형은 추위를 못이겨 몸을 떨고 있다.

버너를 피우고 손을 쬐이게 하고 밖을 보니 앞서갔던 일본대도 되돌아와 철수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도 철수 준비를 하자고 하니 더 버텨보자고 한다. 연료는 떨어지고 회율형은 저체온증 현상까지 보일정도다. 계속이렇게 설동안에 있다가는 무슨일이라도 날까 두려워 하산을 하기로 했다. 11시가 넘어서 하산을 시작했다.

웨스트버트레스에 접어드니 맥킨리 시티까지 우리를 날려버릴 기새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댄다. 바람이 불면 잠시 움추려 있다가 잠잠해지면 곡예하듯 버트레스를 건넌다. 헤드월에 도착하니 몇몇 팀들이 오르고 있다.

우리도 고정자일을 이용하여 하강을 시작한다. 고정자일 끝부분에 도착하니 엘팀이 우리를 먼저보고 인사를 한다. 엘팀은 우리가 어제 잤던 곳에 짐을 데포시키고 올테니 저녁에 시티에서 보자고 한다. 시티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몹시 무겁다. 아침,점심을 먹지 못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정상을 오르지 못한 이유가 더 큰것 같다.

탠트에 도착하자마자 밤새 얼어붙은 침낭과 신발을 말리고 나니 회율형은 아직도 내려오지 못하고 한시간이 더 지나서야 겨우 탠트에 도착한다. 도착하자마자 뱃속에 있는 것을 죄다 확인시켜주고 그 자리에 쓰러지듯 누워버린다. 뜨거운 물에 유자차를 타서 마시게 한 다음 스프를 끓여 주었으나 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나혼자 점심을 스프로 떼우고 이번 등산의 의미를 새겨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무언가 되는듯 싶더니 날이 새더니 영 아니다. 이곳 맥킨리가 우리를 반기지 않은 모양이다. 이젠 체력에 바닥이다. 모든 짐을 내가 더 짊어져야 했고 모든 고민을 혼자 한 것 같다. 개인의 체력도 중요하지만 파트너의 등반기술과 체력이 같아야 소기의 등반성과를 이루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런면에서 볼 때 너무 차이가 많아 이번 등반의 패배가 아닌가 한다.

등반전 치밀한 계획과 강인한 체력 그리고 팀웍만이 등반의 성패를 좌우하리라 여겨진다.

 

<5. 9. 맑음> 랜딩포인트로 하산

오늘부터 하산이다. 올라올 때는 두 번에 나누어 올렸는데 내려갈 때는 한번에 운반해야한다. 윈디코너를 지나 모터싸이클힐을 돌아 내려가면 스키운행이니 별탈은 없는데 이 두곳이 문제다. 오전10시 하산에 앞서 옆탠트의 엘 일행에게 인사를 나누고 하산을 시작한다. 염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길이 훤하게 열려있다 크레바스도 오픈되어 히든크레바스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지형이 많이 달라져 있다. 윈디코너를 돌아 모터싸이클힐을 내려서니 약 30여동의 탠트촌이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데포시켜둔 스키와 썰매를 찾아 하산을 계속한다.

800미터쯤 내려왔을까 한국팀을 처음 만났다. 대구팀이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등정을 빌며 다시 하산...

3,300미터 지점을 지나 북동빙하 입구에 이르러 한산회 소속인 김광선씨를 만났다.

 

 

▲랜딩포인트에서 김광선씨와 함께

 

혼자서 스키투어를 왔는데 입산허가를 얻지 못해 랜딩포인트에서 C1까지만 왔다갔단다. 그와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우리는 6시가 넘어서야 랜딩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가 랜딩포인트에 처음 들어왔을때는 없었던 레인져 사무실이 본격적인 시즌을 맞아 이동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었다. 항공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애니에게 오늘 나갈 수 있겠냐고 묻자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에 나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김광선씨 탠트옆에 우리 탠트를 설치하고 맥킨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12시가 넘도록 보냈다.

 

 

▲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5. 10. 맑음> 탈키트나,와실라 이동

아침6시 잠을 깨어 뒤척이다 라면으로 아침을 떼우고 9시에 애니 막사로 찾아갔다. 그녀에게 음료를 대접받고 9시에 항공기가 이곳으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도 탠트를 걷어 카고백에 정리하고 빈연료통과 썰매를 반납하고 나니 항공기가 도착하여 마중나온 김광선씨와 에니에게 인사를 나누고 탈키트나로 향했다. 11시30분 탈키트나에 도착하여 레인져사무실에 하산신고를 마치고 나서 허드슨 항공사에 들려 무전기를 반납하고 마중나온 오갑복씨의 차량으로 오후 3시에 탈키트나를 출발하여 저녁7시에 와실라에 도착. 오갑복씨의 사모님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닭 백숙을 대접받고 맛수리조트에 여장을 풀었다. 탠트와 짐을 풀어 말리고 모처럼 몸도 씻고 나니 졸음이 쏟아진다.

 

 

▲와실라 호수가에서

 

<5. 11. 흐림> 체재 귀국

아침에 앵커리지에 대한항공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항공편을 물으니 내일 새벽 4시에 한국항공편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예약을 하고 11시에 숙소에서 나와 장비점에서 시간을 보낸후 오갑복씨의 집에 들러 차를 대접 받고 5시에는 야외에서 불고기 파티를 해 주셨다. 회율형과 나, 그리고 한국에서 등반온 한 친구와 시카고에 산다는 그의 친구 이렇게 다섯명이서 저녁 늦도록 파티를 즐긴후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앵커리지로 향했다.

언제 또 다시 오게 될지 아니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이곳이 왠지 나의 마음을 붙잡고 있다.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는 등반이었지만 고산에 대한 나의 열정이 또 다른 마음 한구석에 타오름을 느꼈다. 아무것도 분간 되지 않는 눈보라 속을 해메이며 썰매를 끌던일, 윈디코너의 바람속에서 크레바스를 건너며 히든크레바스에 빠져 탈출하던일, 영하 40도의 설동안에서 비박하던일, 아쉽게도 정상 등정은 못했지만 이제는 마음 한구석에 평생 기억되길 바라면서 그동안 이같은 글을 쓰게 해 주신 주위의 모든분들게 머리숙여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히 나의 등반 파트너였던 회율형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웨스트버트레스가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것만으로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을 위한 계획 수립을 무시 하여서는 안된다. 물론 대부분의 등반가들은 좋은 날씨에 산을 오르고 내려온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오를 수 있는" 이 산의 등반을 권장한다. 그들은 영하 40도의 혹한속에서 시속 60마일의 강풍이 몰아치는 한밤에 부츠를 신은채 픽켈을 준비해 놓고 탠트가 쓰러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했던 경험을 하지 않은 것을 그들의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유명한 웨스트버트레스 루트는 비기술적인 명성 때문에 등반자들에게 의해 아주 과소평가 되고 있다.

 

 

■ 운행일지

일 정 별

이 동 사 항

비 고

    제 1 일

출국(김포-앵커리지)

와실라 도착

2일

체 재

장비,식량준비

3일

와실라 - 랜딩포인트

탈키트나 경유

4일

휴 식

장비점검, 루트정찰

5일

L.P - C1(남동빙하입구)

 

6일

C1 - C2(북동빙하입구 도착)

 

7일

C2 - C3(2,900m)

 

8일

C3 - C4 - C3

모터싸이클힐 짐 데포

9일

C3 - C4(모터싸이클힐)

 

10일

C4 - 윈디코너 - 4C

윈디코너 식량데포

11일

휴 식

 

12일

C4 - C5(ABC)

맥킨리시티 도착

13일

C5 - 윈디코너 - C5

윈디코너 식량 회수

14일

C5 - 헤드월 - C5

헤드월 식량데포

15일

C5 - C6(헤드월)

헤드월 설동비박

16일

C6 - C7(빌리지)

빌리지 설동비박

17일

C7 - 데날리패스 - C5

기상악화로 하산

18일

C5 - L.P

랜딩포인드 이동

19일

L..P - 와실라

 

20일

와실라 - 앵커리지

 

21일

앵커리지 - 김포

 

 

■ 장비

원정등반은 대상지의 기후와 특수성 그리고 등반기간에 따라 장비의 준비가 필요하다. '88강원대 및 '89서울농대 맥킨리원정 보고서를 참고로 하여 장비를 준비하였다. 맥킨리는 히말라야와는 달리 카라반 구간이 무릎이상 빠지는 눈이므로 이동 가능한 스키를 사용하였으며 짐 수송을 위하여 썰매를 3,300미터까지 사용하였다. 본 원정대의 장비는 대부분 국내에서 구입하고 국내에서 구입하지 못한 장비에 대해서는 와실라에 있는 윈디코너 장비점에서 구입 하였으며 우리가 사용한 장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공동장비 명세서

구분

품 명

규 격

종 류

수량

비고

탠트

3-4인,2-3인용

노스페이스,에코로바

2

 

그라운드시트

1.5x 1.8m

은박시트

1

 

눈삽

100Cm

강철,듀랄루민

2

 

눈톱

50Cm

강철

1

 

스노우바

60Cm

듀랄루민

7

 

반 구

자일

8m/m

에드리드

30m

 

테이프슬링

30m/m

 

20m

 

링슬링

4m/m

 

10m

 

지도

1:25,000

Mt.Mckinley Climber

1

 

온도계

30℃~ -40℃

소형

1

 

고도계

 

아보셋

1

 

스키스톡

 

레키,블렉다이아몬드

1조

 

스키

 

사레와

2

 

스키씰

 

 

2

 

썰매

120x30x10

프라스틱(현지대여)

2

 

표지기

 

화환리본

20m

 

대나무

150Cm

 

30

 

더블백

 

군용

1

 

카고백

 

써미트

2

 

수통

1리터

날진

3

 

고무링

썰매고정용

 

2

 

버너

 

콜맨

2

 

연료통

1리터

MSR

1

 

코펠

대,중,소

라이프

1조

 

보온병

0.75리터

코베아

1

 

라이터

 

불티나

20

 

 

바람막이

 

라이프

1

 

화이트가솔린

1개런

 

4개런

 

프라이어

 

소형

1

 

청테이프

5Cm

 

소량

 

박스테이프

5Cm

 

소량

 

드라이버

+-겸용

소형

1

 

철사

1m/m

 

소량

 

잡끈

4m/m

 

소량

 

건전지

AA

 

50

 

카메라

비디오,자동,수동

알카리

3

 

필름

26,30

코닥,후지

10

 

녹음기

 

소형(카라반시사용)

1

 

태극기

 

 

1

 

회기

 

 

1

 

계획서

 

 

4

 

잡주머니

 

 

다량

 

화장지

 

 

4롤

 

 

- 개인장비 명세서

구분

품 명

규 격

종 류

수량

비고

고글

일반,스키

메스너,줄보

2

 

스키스톡

3단

블랙다이아몬드,레키

1조

 

픽켈

70Cm

사르레모제

1

 

이중화

플라스틱

코플라치

1

 

오버슈즈

 

 

1

 

아이젠

12발

푸트팡

1

 

안전밸트

 

블랙다이아몬드

1

 

카라비너

 

시몽,보나티

4

 

쥬마

동계용

패츨

1

 

베낭

70리터

레드훼이스

1

 

침낭

1,300g

밀레

1

 

침낭커버

800g

고어텍스(다나)

1

 

매트리스

 

허밍버드

1

 

파일바지

 

퍼팩트,파타고니아

2

 

파일자켓

 

퍼팩트,파타고니아

2

 

우모복(상,하)

 

다나

1

 

오버트라우져

 

고어택스(에코로바)

1

 

모자

 

카라반,바라클라바

2

 

스카프

 

 

1

 

장갑

 

스키,파일,실크

4

 

오버미튼

 

OR(고어텍스)

1

 

고소내의

 

파타고니아

1

 

양말

 

에델바이스

5

 

썬크림

 

차단지수42

1

 

 

 

<장비노트>

(장비총평)

본 등반대의 장비 준비는 경량화에 신경을 ?으나 일부 장비는 상상외로 부피와 무게를 차지하기도 하여 사실상 경량화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대부분의 장비는 대원 각자 개인 보유 장비를 사용하였다.

 

(세부평가)

1. 공동장비

가. 막영구

1) 탠 트 : 노스페이스(3-4인용),에코로바(2-3인용) 2동을 준비하여 노스페이스를 주 탠트로 사용 하고 에코로바는 예비용으

    로 준비하 였으며 노스페이스 탠트는 바람에 상당히 강하여 별 탈은  없었으나 2명이 사용하기에는 다소 크다는 느낌을 받

    았음.

2) 스노우바 : 탠트 고정용에 필요한 스노우바는 9개가 소요되나 국내에서 3개를 구입하고 현지에서 5개를 구입, 2개는 픽켈

    로 대 체 사용함.

3) 눈 삽 : 눈삽은 2개중 1개는 국내 철물점에서 구입 개조하여 크러스트가 잘된 눈에서는 매우  효과적 었으나 무게가 많이

    나갔으며 현지에서 구입한 두랄미늄 눈삽은 약하여 끝부분이 휘어지는 단점이 었음

 

나. 취사구

1) 버 너 : 콜맨 2대를 준비하였으나 불완전 연소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1대는 고장으로 사용치 못하였음

 

다. 운행구

1) 스 키 : 사레와 제품을 사용하였으나 무게가 많이 나감.

2) 온도계 : -40℃까지 측정 가능한 온도계를 사용하였음

3) 나침반 : 국내에서 작은 나침반을 구입 사용.

4) 표지기 : 대부분의 등반대는 회색 형광 테이프를 접착하여 사용 하였으나 우리는 꽃집에서 사용하는 리본을 구입하여

   10Cm길이로 잘라 대나무에 부착하여 사용하였는데 멀리서도 잘 보여 운행에 많 도움이 되었음.

 

라. 등반구

1) 자 일 : 안자일렌용으로 사용할 8m/m 30m를 준비하였음

2) 데드맨 : 추락시 확보용으로 준비하였으나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

3) 쥬 마 : 프랑스 페츨사의 쥬마를 준비하였으며 오버글러브를 끼 고 사용하기에는 손잡이 홀드가 적어 사용하는데 약간의 지

    장이 있었음

 

마. 기록구

- 카메라는 3대(8m/m비디오, 수동,자동)를 준비하였으나 비디오카 메라는 건전지가 자주 얼어 랜딩 포인트에 데포시켰으며

  수동카메 라 역시 건전지가 얼어 4,300m에 데포시키고 자동카메라만이 사용에 지장이 없었으나 많은 사진을 찍지 못하였음.

 

2. 개인장비

가. 등반구

1) 고글과 스키고글을 각자 준비하였으며 사용시 반드시 고글 왁스 를 준비하여 고글에 땀과 입김이 서리는 것을 예방하여야

    함.

2) 아이젠은 원텃치 푸트팡을 사용하였는데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함.

3) 신발은 코플라치 이중화를 사용하였으나 사용후 매일 내피를 말 려야 했음.

4) 오버슈즈는 3,300m이상에서 사용하였으며 5,300m이상에서는 필수적이라고 생각됨.

 

나. 의류 및 막영구

 - 의류의 대부분은 파일제품을 사용하고 침낭커버는 고어텍스(다나) 를 사용하였으나 3,300m 이상에서는 온통 얼어붙어 기

    능을 발휘 하지 못함.

 

 식량

구분

품 명

수 량

중량(kg)

구입처

비고

주식

6x2

12x220g

2.646

A 동양식품

 

떡국

9x2

24x250g

5.0

"

 

비빔밥

10

30x120g

3.6

불로식품

 

알파미

10

30x120g

3.6

"

 

라면

6

18x120g

2.16

공무원매점

 

7x2

14

1.5

W CARRS

 

부식

곰탕

8x2

16x45g

0.72

공무원매점

 

육계장

5

5x25g

0.125

"

 

미역국

8

8x25g

0.2

"

 

사골우거지국

15

15x25g

0.375

"

 

간식

초콜렛

 

 

0.2

W CARRS

 

소세지

 

 

0.6

"

 

곶감

 

 

1.0

남대문시장

 

말린과일

 

 

0.7

"

 

육포

 

 

0.7

W CARRS

 

어포

 

 

0.5

남대문시장

 

사탕

 

 

0.3

"

 

 

 

0.3

"

 

미숫가루

 

 

0.8

자체가공

 

반찬

아가미젓

 

 

0.8

남대문시장

 

명란젓

 

 

0.7

"

 

창란젓

 

 

0.7

"

 

소고기다시다

 

 

0.1

"

 

조개다시다

 

 

0.1

"

 

오이지

 

 

0.6

"

 

무우말랭이

 

 

0.5

"

 

소금

 

 

0.06

"

 

차식

설탕

 

 

0.5

"

 

커피믹스

 

 

0.1

공무원매점

 

생강차

 

 

0.1

"

 

쌍화차

 

 

0.1

"

 

쇠고기죽

 

 

0.5

"

 

양송이스프

 

 

0.4

"

 

* 참고 : A 앵커리지, W 와실라

 

<식량노트>

고산등반은 어느 곳이고 식량이 그 등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것 같다. 특히 맥킨리에서는 식량의 중요성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등반대는 대부분의 주부식을 국내에서 구입하고 쌀과 떡국은 앵커리지의 동양식품에서 구입하였다.

카라반시 조식은 주로 떡국을 사용하고 중식은 대부분 행동식(빵,곶감,미숫가루)으로 해결하였으며 석식으로는 쌀과 알파미, 고소비빔밥을 사용하였으나 알파미와 고소비빔밥은 별로 입맛이 나질 않았다. 부식거리는 김치종류는 거의 준비하지 않았고 젓갈(멸치젓,명란젓,창란젓,아가미젓등)종류만을 준비하였으며 무말랭이무침, 오이짱아지는 얼어서 별맛을 느끼지 못했다.

 

■ 의료

구 분

품 명

준비량

용 도

비 고

내복약품

록소닌정

20T

해열,진통

 

니프록사자이드

20T

지사제

 

스테라민

40T

이뇨제,두드러기

 

유로비올

40T

소화제

 

지르텍

10T

두드러기,알러지

 

보나링A

40T

멀미,구토

 

시스타인

30T

진해,거담

 

크로페신

30T

근이완제

 

코-타이레놀

16T

종합감기약

 

외상약품

베타딘연고

30g

창상,화상

 

실바딘연고

30g

화상,동상

 

제놀스틱

40g

근육통,타박상

 

립크림

10g

 

 

주사약품

베타메타손

5앰플

이뇨제

 

디클로페낙

5앰플

진통제

 

기 타

반창고

2개

 

 

압박붕대

1개

 

 

1회용주사기

10개

 

 

대일밴드

소량

 

 

베이비파우더

100g

 

 

가위

1개

 

 

 

<의료노트>

본 등반대는 다른 등반대의 의료보고서를 기준으로 약품을 준비하였으며 사전 계획과 의료지식 부족으로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약품도 있었다. 랜딩포인트에서 부터 회율형은 등반이 끝날 때 까지 구토 증세를 보여 병영기독의원 김원장님이 지어준 약을 사용하였으며 5,300미터에서 필자 역시 두통 증세로 약을 복용하였으나 고소에서 오는 두통에는 별 효과가 없었고 하룻밤을 자고나니 나아진듯 하였다. 그러나 정상공격시 심한 눈보라로 회율형의 저체온증 현상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 맥킨리 관련 자료

- 돌아오지 않는 봄 (평화출판사)

- 산 (조선일보사)

- 맥킨리 원정자료 (강원대, 서울농대산악부)

- HIGH ALASKA

- 지도 (Mt Mckinley Climber 1:25,000)






Posted by wasillaoh

1988년5월29일
뉴욕산악회로 부터 레인져사무소로 구조요청이 왔다.
케신릿지를 등반중이던 뉴욕산악회 소속 이종관/정현용대원은 케신릿지5000m 이상 지점에서 
정현용대원이 고소증세로 움직일 없다고 하는 긴급 구조 요청을 접수 하였다.
레인져사무소는 긴급 핼기 구조 협조요청을 보냈으나 날씨 악화로 치눅크[Chinook]헬리콥터가 사고 지점에 접근할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모든 장비와 구조 대원과 산위에서 생사를 저울질 해야 하는 등반대원간의 치열한 인내 시간들은 모두를 힘들게 하였다. 그리고 몇일이 지난 

6월3일 날씨가 다소 개임으로 치눅[Chinook] 헬리콥터가 다시 사고현장에 접근하여 사고자를 구조하여 앵커리지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사고에서 느낀점은 조난된 사고자는 산위에서 안타깝게 구조를 기다리 지만 그들을  구하기 위해 지상에서 몇칠씩 날씨가 개일때를 기다리며 대기 해준 미공군 구조대와 Chinook핼기 조종사들과 구조대원들과 수만불의 경비를 지출한 미국정부에 감사한다.


Posted by wasillaoh